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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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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어울리는 곳을 꼽는다면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도 능히 그 리스트에 들 것이다. 일망무제의 지평선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광막한 초원 한복판에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초현대식 건축물들로 가득한 인공 도시가 들어섰으니 말이다. 대통령궁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아스타나판 주작대로를 중심으로 광장, 정부청사, 인공운하, 주거단지, 공원, 상업 시설 등이 배열된 모습은 도시 전체가 첨단 건축물의 전시장이요, 도시 계획의 실험장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중앙아시아의 고도 알마티를 버리고 1997년 이곳으로 천도를 단행하기까지엔 극심한 반론이 있었다. 겨울이면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지에 일국의 수도를 옮기는 게 가당키나 하며 막대한 재원은 어떻게 조달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명분과 옛 종주국 러시아계 세력에 대한 견제란 전략적 목적을 위해 그는 카스피해의 석유·가스와 우라늄을 판 돈을 쏟아부었다. 아스타나의 기적과 더불어 그의 권력 기반은 공고해졌다.

이처럼 각국 수도 중에는 인공적으로 건설된 계획도시가 적지 않다. 호주의 캔버라나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지금도 건설 중인 말레이시아의 푸트라자야가 그런 경우다. 따지고 보면 서울도 무학대사가 골라준 땅에 정도전이 도시의 기본 설계도를 그린 계획도시였다. 원·명·청을 거치며 변방에서 중국 대륙의 중심이 된 베이징 역시 마찬가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로운 수도 건설은 위정자들의 꿈이었다. 권력을 계승한 사람보다는 쟁취한 사람들에게 그런 경향이 강했다. 과거와 결별하면서 자신의 통치 철학을 가시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는지 모른다. 실제로 그는 재임 중 아스타나와 브라질리아, 푸트라자야를 방문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경국대전까지 들춰낸 헌법재판소 결정에 부딪혀 굴절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온전한 수도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국가 중추 기능의 분산이 필연적이다. 그러니 이미 5조원의 자금이 투입된 지금도 타당성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아스타나에 들렀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이채릭타워에 오른 그가 세종시를 떠올리지 않았을 리 없다. 건설사 CEO와 서울시장을 역임한 대통령에겐 과연 이 어려운 난제를 풀 복안이 있을까.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