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에어컨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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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에어컨은 냉장고와 똑같은 원리다.

폐쇄된 공간 안의 열량을 밖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공간 안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냉장고의 뒷면 (또는 옆면)에서 열이 나는 것처럼 에어컨은 건물 밖으로 열풍을 내뿜는다.

휘발성이 강한 액체가 열량을 옮기는 매체, 즉 냉매 (冷媒) 로 쓰인다.

냉매는 집 안팎에 있는 두개의 코일 모양 파이프 사이를 순환하며 열량을 집밖으로 퍼낸다.

액체상태의 냉매가 집 안의 냉각코일을 지나는 동안 증발하면서 주변 공기로부터 기화열 (氣化熱) 을 빨아들인다.

기체상태가 된 냉매는 파이프를 따라 집 밖의 방열코일로 옮겨진 다음 압축돼 액체로 돌아간다.

이 때 내뿜는 압축열은 대기 중에 발산된다.

액체상태로 돌아간 냉매는 다시 냉각코일로 돌아가며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열효율 1백%의 에어컨이라면 집 안에서 흡수하는 열량과 집 밖에 발산하는 열량이 똑같다.

그러면 지역 전체의 온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효율 1백%의 기구는 없다고 열역학 제3법칙이 말해준다.

에어컨을 돌리면 돌릴수록 지역 전체의 기온은 올라가게 돼 있다.

에너지 소비수준이 높아진 거대도시 주변에서는 특이한 기후현상이 나타나 '도시기상학' 이란 새로운 학문분야까지 생겨나고 있다.

에어컨 보급으로 인한 도시지역 기온상승은 그중 흔한 현상의 하나다.

어찌생각하면 '소경 제 닭 잡아먹기' 식 악순환이다.

에어컨이 아직 많지 않을 때는 그 쾌적한 맛이 극소수의 사치품이었을 뿐, 기후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

그 맛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리게 되면서 문제가 달라진다.

에어컨이 늘어날수록 도시의 무더위는 더욱 심해지고, 그에 따라 에어컨은 서민층에게까지 필수품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내부' 를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외부' 로 불쾌한 열기를 퍼낸다는 발상은 자연에 대한 인류문명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영역인 '내부' 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자연의 영역인 '외부' 를 아무렇게나 대해 온 것이 1만년 문명의 역사다.그런데 이제 인간이 세상을 꽉 채우고 나니 안과 밖이 따로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환경문제의 인식이다.

집에도 에어컨을 달고 싶다.

초여름부터 더위가 이 지경이니 한여름이 되면 어떻게 버텨낼지 걱정된다.

에어컨을 달고 시원하게 지내면 일도 더 잘될 것 같다.

하지만 내 집 시원하게 하겠다고 골목에 열풍을 뿜어대는 것도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위와 또 한차례 정면대결을 벌일 형편인데, 이 대결의 상대가 자연인지 문명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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