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르는 위성방송시대] 중. 발등의 불 콘텐츠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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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 사례1= 10일 오후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영상산업진흥 세미나. 독립제작사 다큐서울 정수웅 대표의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88년 올림픽, 95년 케이블방송 개국은 방송환경에 좋은 계기였다. 용기있는 PD들이 방송사 온실을 박차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방송사들은 파이어니어에게 용기와 기회를 주지 않고 자회사를 설립해 제작을 독과점했다.

◇ 사례2= 홍콩 위성방송 스타TV의 음악방송인 V채널에 '미러 인 서울' 을 공급하고 있는 GV멀티미디어의 조성진 PD. "방송 3사를 상대하기 버겁다. 그래서 외국방송사를 노크한다. 프로그램 저작권마저 방송사가 장악하는 우리와 달리 외국방송사는 방영권만 갖기 때문이다. 인건비 따먹기에 그치고 있는 외주제작 시스템의 근본적 체질개선이 절실하다.

통합방송법의 조속 통과를 전제로 빠르면 2000년말 시험방송이 시작될 한국위성방송. 60~80개의 디지털 채널이 시청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자연스럽게 의문이 든다. 무슨 재주로 수십여 채널을 채울까. 그럴 만한 제작능력이 있는가. 지상파.케이블과 차별화한 편성이 가능할까. 이른바 콘텐츠 (내용) 문제가 위성방송의 최고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위성방송은 비디오 대여점에 비유된다. 채널 선택권이 협소한 지상파 방송과 달리 시청자가 돈을 내고 자기가 보고 싶은 프로를 '찍어' 보는 것이 쉬워지기 때문.

예컨대 프랑스 Canal+는 위성방송의 다채널 특성을 활용해 똑같은 프로로 편성된 채널을 시간차를 두고 3개 채널에서 순환방영해 생활시간대가 다른 여러 시청자의 욕구에 부응한다.

채널의 세분화도 대세다. 일본 SkyPerfecTV 채널은 영화 31.스포츠 22.뉴스&다큐 20.음악 12개 등에 이른다. 그만큼 다양한 콘텐츠가 구비돼야 한다는 증거다.

영국 위성방송 BskyB 자료에 따르면 위성방송 전체경비에서 프로그램 부문이 60%를 차지할 만큼 콘텐츠는 위성방송의 핵심이다. 이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국내업계에선 위성방송이 시작해 흑자를 내기까지 6년 정도 걸리고 또한 3조원 정도 투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이중 1조8천억원 정도가 콘텐츠 개발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콘텐츠와 관련해 떠오른 쟁점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외국프로의 국내 장악에 대한 우려. 반면 업계에선 크게 우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국내 방송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또 시청자들도 외국프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

정용준 전북대 교수 (신문방송학) 는 "무조건 외국프로를 걱정할게 아니라 외국채널의 도입을 허용하되 그 반대로 국내채널의 개설도 의무화한 캐나다처럼 영상문화 발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고 진단했다.

둘째는 프로그램 공급 능력. 아직은 미흡하나 95년 케이블방송 출범 때보다 유리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미 케이블 PP (프로그램 제작자) 들이 많은 돈을 들여 투자를 했고, 위성채널이 꼭 신규프로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 만큼 비관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

특히 빈사상태에 빠진 독립제작사의 활성화가 기대된다. 방송계 실핏줄에 비유되는 독립제작사의 터전이 확대될지 관심거리다. 단지 방송사와 독립제작사의 불평등한 관계가 해결돼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독립제작자가 저작권을 가져야 동일한 프로를 지상파.케이블.위성방송에 고루 내보내는 체제가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

이런 면에서 외국에선 위성방송 정착으로 케이블 시장도 넓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경우 위성방송이 도입된 89년 당시 30만 가구에 그친 케이블 가입자가 최근에는 3백만 가구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공급하는 전문제작 시스템이 갖춰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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