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대기자의 투데이] 북.중화해와 햇볕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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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체제로서의 사회주의가 붕괴한지 10년. 그 전반부에 해당하는 89년에서 94년까지의 5년은 북한에는 악몽 같은 시기였다.

한국의 북방정책이 90년 한.소 수교와 92년 한.중 수교의 결실을 본 결과 북한은 정치체제와 경제를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배후의 지원세력을 한꺼번에 잃었다.

94년 김일성 (金日成) 의 사망으로 위기의식과 절망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영삼 (金泳三) 정부의 흡수통일론은 북한을 더욱 자극했다.

그래서 북한은 생존전략으로 핵과 미사일에 착안하고 벼랑끝 외교로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제 북한은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

러시아가 서울편향의 한반도정책에서 남북한 등거리외교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 북한을 고무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중국과의 관계회복이다.

김영남 (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끄는 대표단의 중국방문은 북.중 관계 개선과, 그것을 통한 북한의 자신감 회복에 큰 전기 (轉機)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러시아는 중국과는 비교가 안된다.

가령 한국이 통일되고 거기에 미군이 계속 주둔한다고 해도 광대한 유라시아대륙에 국토가 걸쳐 있고 나라의 심장부가 유럽쪽에 있는 러시아는 심각한 안보상의 위협을 느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중국에는 사실상 미국의 군사력과 마주치는 불안한 사태를 의미한다.

21세기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예상하면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한국의 통일은 중국의 앞마당에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이다.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연간 1백만t 이상의 식량을 제공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7년동안 북.중 관계는 결코 우호적이지 못했다.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생소한 이름의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경제적인 동기에서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경제협력의 폭을 넓혀가는데 대해 북한은 배신감을 느꼈다.

김정일이 1995년 6월 19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담화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배신자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왜곡시켜 사회주의가 방향을 잃고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다는 내용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중국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중국의 시장경제도입과 실패로 끝난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만과의 관계를 확대하고 대만의 핵폐기물 수입협상까지 벌여 중국을 자극했다.

중국은 김정일이 중국에 와서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96년 두 나라가 각각 열팀 이상의 방문단을 보내는 것을 계기로 북한과 중국관계는 개선쪽으로 방향을 고쳐 잡았다.

그런 관계개선의 축적과, 미국의 대북 (對北) 정책의 재검토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제정세의 큰 변화가 김영남의 이번 중국방문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김영남은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중국측은 북한에 중국식 개혁.개방을 강요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마침내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추인' 한 셈이다.

미국과의 빅딜을 앞둔 북한에는 중국카드가 큰 힘이 된다.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로 작정한 동기는 중요하지 않다.

지난해 8월과 9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해 기세를 올리면서 경제활성화 계획의 추진에 착수한 북한이 중국이라는 '비빌 언덕' 을 되찾은 것이 중요하다.

장쩌민 (江澤民) 이 김영남을 통해 북한에 미국.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촉구한 것은 북한에는 큰 압력으로 작용해 한.미.일이 제시하는 한반도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의 전망을 밝게 하는 것이다.

중국이 대규모 식량과 에너지 원조를 지렛대로 북한에 한국과 미국의 포용정책의 수용을 촉구하고, 북한은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햇볕정책의 성공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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