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比대통령 단독인터뷰] '기업하기 좋아야 가난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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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을 국빈 방문 중인 조지프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을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빈민의 친구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정치인답게 말을 꾸미지 않고 소탈하게 질문에 응했다.

김영희 = 대통령께서는 대중 (大衆) 의 대변인을 자처하면서,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셨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중산층과 상류층의 지지는 받지 못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후 필리핀 중산층의 지지를 확보했습니까.

에스트라다 = 나의 중산층 포용정책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지난달까지의 나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72%나 됐어요. 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여전히 높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金 =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가들이 대통령의 정책과 비전에 절대적인 신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빈곤층에도 잘하고 기업에도 잘할 수 있습니까.

에스트라다 = 물론이죠. 기업이 있어야 가난을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기업은 성장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전임 대통령이 추진하던 자유화.민영화.규제완화 정책을 계속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

金 = 91년 9월 필리핀 상원은 수비크만과 클라크의 미군기지 유지 협약 인준을 거부해 두 미군기지는 필리핀에 반환됐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당시 상원의원으로서 그런 결정에 찬성하셨습니까.

에스트라다 = 나는 적극적으로 비준거부에 찬성했어요.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것은 필리핀 주권 침해입니다. 필리핀이 진정한 독립국가라고 할 수 없어요.

金 = 한국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주권국가가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는데요.

에스트라다 = 한국인과 필리핀인들의 견해 차이라고 하겠지요. 그러한 견해 차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필리핀 내에서도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金 = 경제규모나 인구로 볼때 중국이 21세기의 동아시아에서 정치.군사적 강대국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 날이 오면 중국이 이 지역의 질서와 안정을 깨뜨릴 것으로 보십니까.

에스트라다 = 가상적인 질문이라 대답하기 어렵군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세력균형이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군이 주둔하지 않더라도 필리핀의 경우처럼 미국과의 상호 방위조약 체결을 통해 지역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세력균형자로서 미국의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金 = 이런 질문 한다고 언짢게 생각 마시기 바랍니다. 대통령께서는 선거기간 중 스스로 외도를 한 사실뿐 아니라 사생아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정직과 솔직함의 극치라고 생각합니다만 정치에 있어서 도덕은 어떤 위치를 차지합니까.

에스트라다 =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에 대한 평가와는 관계 없는 일 아닙니까.

金 = 그렇다면 르윈스키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빌 클린턴 대통령은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에스트라다 = 클린턴 대통령도 인간 아닙니까. 우리는 모두 인간입니다. 사생활은 공적인 생활과 관계 없다고 생각합니다.

金 =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께서는 영화 배우 출신으로는 두번째로 주요 국가의 대통령이 된 인물입니다. 배우 경력은 정치가로서의 대통령에게 플러스가 됩니까, 마이너스가 됩니까.

에스트라다 = 35년 동안 배우생활을 한 나는 정치인으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필리핀 국민에게는 친근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나를 기억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배우로서의 나의 과거는 요긴한 자산입니다.

金 = 리콴유 (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모하마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 등 아시아 지도자들과 앨 고어 미국 부통령 및 미국 내 저명 학자들 간에는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이 요란했습니다. 대통령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아시아적 가치는 실체가 있는 건가요.

에스트라다 = 아시아적 가치는 분명히 실재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지키고 있어요. 金 = 왜 배우에서 정치가로 인생 행로를 바꿨습니까.

에스트라다 = 배우 활동을 하는 데는 연령상 제한이 있는 것이 이유의 하나입니다. 나는 배우시절 주로 노동자.운전수.농부 등 빈민층 역할을 많이 해 그들의 대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들로부터 부와 명예를 얻었으니 그들에게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장 임기 16년과 부통령 임기 6년 동안 봉급을 한푼도 안받았고, 지금은 대통령 봉급을 고스란히 가난한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내고 있습니다.

金 = 바쁘신 가운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 : 박장희.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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