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교육개혁] 4. 평가가 두려우면 그만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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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 중부의 명문 아이오와대. 숲이 우거져 아늑한 캠퍼스 분위기로 유명한 이 대학은 수년 전 한 대학원생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발단은 까다로운 박사학위 논문심사. 물리학 전공인 이 학생은 학장보 등 교수 4명이 자신의 논문에 이런저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보완.재보완을 거듭하자 그만 히스테리가 발작했다.

교수들과 대화중 "잠깐 밖에 다녀오겠다" 며 집에서 총을 가져와 교수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뒤 자신도 현장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으로 3명의 교수가 현장에서 숨졌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대학의 학위심사가 어느 정도 서슬 퍼렇게 이뤄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학위심사뿐이 아니다.

선진대학들은 평소의 학업평가도 엄격.엄정하게 실시한다.

미 미주리대에서 이번 봄학기 '자연자원 정책' 을 수강한 23명의 학생들은 학기가 끝난 지금 녹초가 돼 있다.

버나드 루이스 교수의 빈틈없는 평가 때문이다.

그는 학기초 평가방법과 관련, '시험은 총 네번, 매주 리포트 제출, 학기말 논문형 리포트는 별도…' 라는 공지사항을 인터넷에 띄웠다.

그는 학기중 수시로 학생들을 호출, 현 시점에서의 성적 수준이 어느 정도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결과를 빚게 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어떤 항목에서 특히 분발해야 한다는 등 '중간평가' 도 아끼지 않았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들볶는' 것이다.

이 과목을 수강했던 엘리자베스 로저스 (23) 양은 "무척 힘들게 학점을 따냈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교수님을 존경한다" 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미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학기말은 거꾸로 학생들이 교수를 평가하는 시즌.

"교수의 교재 선택에 문제는 없었는가" "강의 내용은 만족스러웠나" "강의중 질문을 자유스럽게 할 수 있었는가" 등. 모두 17개 세부항목에 학생들은 '매우 동의' '동의' '보통' '동의 안함' '매우 동의 안함' 의 다섯가지 답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물론 "답변에 성의가 없다" "연구실로 찾아가도 만날 수가 없다" 는 등의 주관적인 코멘트도 할 수 있다.

공정성 유지를 위해 해당교수에게는 학생들의 학점이 다 매겨진 후에 보여준다.

이 대학 저널리즘 스쿨의 토머스 바워즈 부학장은 "만약 10% 이내 학생들이 교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면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그 이상의 학생으로부터 부정적 의견이 나오면 그때는 특별회의를 열고 대책을 세운다" 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평가결과는 정례적인 교수평가 자료로 쓰이는 것은 물론 테뉴어 (종신임기제) 심사때나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격할 때도 활용된다.

프랑스 파리 근교 세르지 퐁트와제에 위치한 명문대 에섹 (ESSEC)에서는 최근 마케팅.재정학을 가르치는 교수 4명이 '퇴출' 됐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다" "과제물은 많지만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는 평가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서구 대부분의 대학에서 교수 평가의 여러가지 기준 가운데 30%가 학생들 몫이다.

교수들로선 강의의 수준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끔 돼 있다.

평가에 시달리는 것은 대학사회 만이 아니다.

"테오군 아버님, 어머님. 오늘은 테오를 일찍 재우시고, 내일 등교 때는 테오가 좋아하는 옷과 신발을 착용시켜주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 아침까지 테오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전국학력평가시험 (Standardized Test) 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13일 미 LA 클로버 초등학교의 마우린 멜볼드 (56.여) 교장은 전 학부모에게 일제히 이런 가정 통신문을 돌렸다.

캘리포니아주내 거의 모든 학교는 이 시험을 앞두고 몇주 전부터 '특별반' 까지 운영하면서 모의고사를 실시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

교사들의 '목' 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시험결과에 따라 매겨지는 주내 8천여개 초.중.고교의 학교순위는 학교 예산증감은 물론 교장.행정 임원들의 교체 여부까지 가름한다.

상위권 학교에는 학생 1인당 1백50달러라는 당근이 돌아가지만 하위권 학교에는 인사.재정적 불이익이라는 채찍이 돌아간다.

50% 이내에 들지 못한 중.하위권 학교의 경우 '학업성취도 향상계획 (Underperforming schools program)' 을 세우도록 한다.

다음해에 이 프로그램을 잘 이행, 성적이 현저히 좋아진 학교에 대해선 총 1억5천만달러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영국의 경우는 이보다 더하다.

영국 교육 당국은 최근 교사들의 임금수준을 교사들의 성과, 바꿔 말하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연동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사들의 항의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교육의 질 제고' 라는 절대 명제를 위해서라면 다소간의 부작용쯤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것이 영국 정부의 입장이다.

시리즈 취재팀

▶국제부 = 김동균 (팀장). 이철호. 최형규. 이훈범.김현기 기자

▶특파원 = 김석환 (모스크바) , 배명복 (파리) , 신중돈 (뉴욕) , 김종수 (워싱턴) , 오영환. 남윤호 (도쿄) , 유상철 (베이징) , 진세근 (홍콩) 기자

▶해외취재 = 민병관. 권영민. 이상일. 이규연. 강서규. 정선구. 예영준 기자

▶사회부 교육팀 = 오대영.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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