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생활고 한국여성들 日농촌총각과 결혼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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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11일 오후 1시쯤 일본 야마가타 (山形) 현 후나가타 (舟形) 의 한 농가에서 불이 났다.

경찰은 방화로 보고 수사한 끝에 집 주인 소마 도미오 (相馬豊雄.42) 로부터 "보험금을 노리고 불을 질렀다" 는 자백을 받아냈다.

"한국 여성을 아내로 맞으려고 농협에서 4백만엔 (약 4천만원) 을 빌려 한국인 중매쟁이에게 주고 결혼을 했다.

그러나 아내가 반년도 안돼 가출하는 바람에 삶의 의욕을 잃은 데다 빚 갚을 길도 막막해 불을 질렀다" 는 것이다.

지난해 9월 같은 현의 사가에 (寒河江) 시에서 45세의 한 농부가 강에 투신, 자살했다.

그는 두달 전 한국 여성 (38) 과 결혼했으나 곧 부인이 가출, 실의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출신인 부인은 결혼 후 "돈을 왜 내게 맡기지 않느냐" "주방이 더러운데 왜 안 고쳐주느냐" 는 등 남편과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이후 일본 농촌으로 시집가는 한국 여성이 크게 늘면서 현지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한국 출신 부인이 특히 많은 일본 동북부 야마가타현의 경우 지난해에만 약 2백명이 일본인과 결혼한 것으로 현지 취재 결과 밝혀졌다.

이는 예년의 4배가 넘는 숫자다.

IMF 이후 국제결혼이라도 해 외국에 나가려는 여성이 많아진 데다 일본에 먼저 건너간 여성들이 건당 수백만원씩 하는 소개료를 벌기 위해 앞다퉈 중매에 나서기 때문이다.

야마가타현 민단의 주제규 (37) 사무국장은 "이곳은 전형적인 농촌이어서 노총각이 많고 성혼 사례비도 다른 지역보다 높아 시집온 지 얼마 안된 한국 여성들까지 중매업자로 나선다" 며 "올해엔 5백명 이상 들어올 것으로 보이며 후쿠시마 (福島) 등 인근 현으로도 확산되는 추세" 라고 말했다.

야마가타현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일본에서 유일하게 거주 교포수 (6백15명) 보다 한국에서 건너온 부인의 수 (6백47명)가 더 많은 곳이 됐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중 일본인이 배우자인 사람은 약 2만명. 이 가운데 재일동포를 제외한 5천명쯤이 한국에서 건너간 여성일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한다.

서울 한국혼인협회 국제부 박타향 (66) 씨는 "상담소를 통해 일본인과 결혼하는 숫자가 최근 2, 3년새 연 (年) 1천명으로 늘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야마가타현에서 산다" 고 말했다.

이곳 남성이 내는 성혼 비용은 보통 3백만엔 (약 3천만원) .이중 신부에게 결혼 준비금 명목으로 50만~80만엔이 가고, 현지에서 남자를 소개하는 중매인이 약 1백50만엔, 한국쪽 중매인이 70만~1백만엔쯤 갖는다.

도쿄 (東京) 나 오사카 (大阪) 등 대도시에 비해 2배가 넘는 액수다.

일본인 결혼상담업자인 유키 아사요시 (結城麻吉.77) 는 "3년 전만 해도 중매업자가 10여명뿐이었으나 최근 50명도 넘는 한국 여성들이 뛰어들었다" 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결혼소개업이 94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고 지난 3월부터는 완전 자유화되면서 상담소가 난립, 한.일결혼 소개소가 전국에 1백곳쯤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졸속' 으로 맺어지는 부부가 많은 만큼 불미스러운 일들도 잦다.

일본인과 결혼한 지 10년 된 정문숙 (37) 씨는 "평일 대낮에도 온천에 가면 한국 여자들이 무리지어 떠들고 술 마시며 논다" 면서 "일본인들은 이들을 보면 '콩나물 대가리 따러 왔느냐 (쉽게 돈번다는 뜻)' 고 비아냥거린다" 고 했다.

8년 전 일본인과 결혼한 윤인양 (40) 씨는 "소개료를 벌려고 1년도 안된 신부를 부추겨 이혼시킨 뒤 다른 일본인에게 다시 소개하는 일도 있어 일본인들이 '인신매매' 라고 수군거린다" 며 낯을 붉혔다.

민단 부인회 조봉림 (68) 회장은 "일부 한국 여성들 때문에 잘 살고 있는 다수가 피해를 본다" 며 "얼마 전 현 지사에게 '정화' 를 건의했으나 뚜렷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은 당사자인 한국 여성들의 신중한 선택과 난립 중인 중매업자의 체계적 관리가 중요하다" 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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