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경찰대 지영환 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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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 만학도 경찰관이 20일 광운대 하계 학위수여식에서 석사 학위와 함께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논문 제목은 '마약류 중독에 의한 정신범죄 연구'. 그는 다음날인 21일 고려대에서 '대통령의 리더십과 대 의회 관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또 석사 학위를 받는다. 전체 수석졸업(평점 4.5 만점에 4.43)으로 총장상 수상자로 선정돼 있기도 하다.

그는 올 가을학기부터 박사 과정에 들어간다.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다. 얼마 전 치른 이 대학원의 입학시험에서 그는 수석을 차지했다. 동시에 두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수석 졸업에 수석 입학. 전업 연구자에게도 쉽지 않은 일을 격무에 시달리기 일쑤인 경찰관이 주경야독으로 해낸 것이다. 주인공은 경찰대 수사보안연수소 소속 지영환(37) 경사.

그런데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공부와 연구에 관한 범상치 않은 배경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남 고흥 출신인 지 경사는 1986년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90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 일단 공무원이 됐다"는 그는 경찰관이 된 그해부터 러시아어 공부에 몰두해 통역사 자격을 따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러시아어 통역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고려대 정책대학원과 경희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연구과정을 수료했다. 99년부터 2000년까지는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을 다녔다.

그는 '국가와 도청'(도서출판 그린)이라는 600쪽 분량의 책을 냈다. 이 책으로 그는 2000년 '신 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올해 초에는 계간지 '시와 시학' 신춘문예 신인문학상에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했다. 태권도가 공인 6단이며 무선통신사.애견미용사 등 지금까지 50여개의 국가자격증을 따놓았다. 경찰 총기 피탈 안전장치 등 두 건의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지 경사는 "도청 방지와 마약 수사에 관심이 많아 행정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됐고, 공부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자신의 공부 편력을 설명했다.

"학비 때문에 변변한 적금 하나 들지 못해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공부 때문에 근무에 소홀했을 거라는 오해를 사는 게 더욱 걱정스럽다"는 그는 "국가 행정과 마약 수사에 관한 공부를 계속해 마약 문제를 행정적으로 접근하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이수기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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