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어떤 효자에게서 받은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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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꼭 10년 전, 한 의료인이 불치의 병을 앓고 있을 때 역시 의사인 아들은 아버지의 쾌유를 비는 뜻으로 아침마다 냉수욕을 한다고 했다.

냉수욕을 하는 까닭은 자신이 고교 시절 대학입시 공부를 할 때 아버지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 대신 "네가 이처럼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목표한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데 내가 함께 도와주고 싶어도 길이 없으니 나는 추운 겨울이지만 냉수욕을 해 너를 격려한다" 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냉수욕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의사여도 아버지 병을 치유할 길이 없으니, 이제는 자신도 겨울날 냉수욕을 하면서 아버지의 병의 고통을 나누고 아버지에게 정성을 바치는 뜻에서 냉수욕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때때로 자신의 아들에게도 할아버지의 병을 낳게 하기 위한 정성이니 너도 함께 하자며 부자가 냉수욕을 한다고 했다.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의사아들은 그 해 구정 그믐날 밤 부부가 함께 필자를 찾아와 아버지의 장례식과 49재 동안 아버지를 위해 천도 (薦度) 의 정성을 다해 준데 대해 퍽 고맙다며 새삼 정중한 인사를 했다.

그 후로도 그 부부는 1년 내내 아무 소식이 없다가도 그믐날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으로 10년 동안 한결 같았다.

이제는 74세가 된 그의 어머니가 병환이 나셨는데도 역시 의학의 한계를 느낀다며, 고작 고통을 덜어드리는 도움밖에 드릴 수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 어머니는 40여년간 원불교 신앙생활을 하는 교도로 말 수는 적어도 속깊은 정이 있고 법도가 몸에 밴 분이었다.

병세가 점점 악화돼 가는데도 자신의 건강문제에 대해선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병을 잊은 듯 '혼불' 을 탐독, 10권 한 질을 독파하셨을 때는 우리 어머니가 비범하신 분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고 했다.

생에 집착하지 않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달관자 (達觀者) 같이 보이기도 하고 병중에도 한가롭고 넉넉해 자녀들이 모시기가 한결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머니가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지, 의사아들은 "아직 어머니가 의식이 있으신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천도독경을 해드리고 싶다" 고 전화를 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범상한 사람들은 현세 (現世)에 사는 것만 큰 일로 알지마는, 지각이 열린 사람들은 죽는 일도 크게 아나니, 그는 다름이 아니라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수 있으며… 나이가 40이 넘으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갈 때에 바쁜 걸음을 치지 아니하리라" (대종경 천도품 1장)

그 의사아들은 '잘 죽는다는 것은 모든 착심 (着心) 을 여의고 청정일념 (淸靜一念) 으로 떠나는 것' 이란 법문에 크게 유의하고 있었던 듯 어머님을 위해 천도독경을 청한 것이다.

독경을 하기 위해 병실에 들어섰을 때는 오후 9시였고 환자는 매우 위중한 상태처럼 보였다.

경종이 울리고 독경소리가 나자 환자는 갑자기 몸을 요동하며 필사적으로 일어나려고 했다.

아마 누워서 독경을 들으면 안된다는 신앙인의 경건한 잠재의식이 발동한 듯 했다.

의사아들은 어머니를 일으켜 자신의 품에 편안히 안고 독경을 듣도록 해드렸다.

그 때 그 아들은 어머니 귀에다 대고 마치 정다운 귀엣말이라도 하듯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을 지극 정성으로 독송해드리면서 간간이 어머니의 뺨에 자신의 볼을 비비곤 했다.

마치 자장가를 듣던 아기가 소르르 잠이 들 듯 그 어머니는 독경삼매 속에 마지막 숨을 깊게 내쉬면서 이 세상을 떠나셨다.

저 세상으로 떠나는 어머니가 청정일념으로 편히 가셨다는 안도감에 젖어든 의사아들은 방금 잠에 든 아기가 깰세라 조심하듯 그렇게 침묵 속에 어머니를 한참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도 그 아들이 하는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3시간 30분 동안 독경이 이어졌고, 그 어머니가 운명하셨을 때는 자정을 넘긴 0시30분이었다.

생을 예술처럼 마감하고 떠나시는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필자가 장시간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이 의사아들이 10년 동안 그믐날 밤마다 찾아왔던 그 공을 갚고 있는 것임을 문득 깨달았다.

부모님의 상을 당하고도 그 자녀들이 슬픈 기색이 안보이면 공연히 고인의 한 평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딱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돌아가신 자기 부모를 위해 슬퍼하며 지극 정성을 바칠 때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고 고인이 된 그 부모의 지난날 한 평생이 다복한 인생이었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의사아들에게서 받은 감동의 여운은 참 오래 갈 것 같다.

박청수 원불교 강남교당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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