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프런트] 술꾼 치료 프로그램 ‘절반의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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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부산시 해운대구 반송2동 어린이 놀이터에서 소란을 피우다 부산의료원으로 후송된 주취자를 의료진과 경찰관들이 돌보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9일 오후 6시 부산시 해운대구 반송2동 어린이 놀이터. 술에 취한 황모(50)씨가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했다. 놀이터 주변에서 놀던 10여 명의 어린이가 놀라서 달아났다. 황씨 주변에는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잠시 후 주민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반송지구대 위대해(27) 순경 등 경찰관 2명이 황씨를 119 구급차에 태워 부산의료원으로 후송했다.

황씨는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소변을 보고 계속 고함을 질러댔다. 부산의료원 응급실로 옮겨진 뒤에도 경찰과 의료진에게 욕설을 해대며 난동을 피웠다. 이날 오후 11시쯤에야 다소 진정된 황씨는 112순찰차를 타고 귀가했다.

황씨의 경우처럼 부산 시내의 58개 경찰지구대에서 1∼5월 사이 처리한 주취자(酒臭者·상습 주정꾼) 처리 업무는 5만4925건. 하루 평균 364건에 달한다. 지구대 업무의 3분의 1가량이 주취자와 관련된 것으로 부산지방경찰청은 파악하고 있다. 부산 번화가인 전포·서면·연일 지구대에서는 거의 매일 찾아오는 주취자들 때문에 경찰관들이 치안 등 고유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전국적으로 주치자 처리 비용만도 500억원으로 추산된다.

현행법으로는 주취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 주취자에 관한 처리는 경찰관 직무집행법(보호조치)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자살을 기도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을 때만 보호조치하도록 돼 있다. 술 먹고 소란만 피우는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함부로 연행하면 인권침해 논란을 빚을 수 있어 경찰관들도 꺼리고 있다.

부산경찰청이 주취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상습 주취 소란자 치료·보호 프로그램’을 도입, 관심을 끌고 있다. 7월 15일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10월 15일까지 석 달 동안 부산시의사회·부산의료원의 협조를 받아 시범 운영한다.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를 받아 병원으로 후송, 전문기관에 보내 치료받게 하거나 안정시킨 뒤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현재 부산 시내 7개 지구대에서 시행 중이다.

사상경찰서 주례 지구대에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남모(37·여)씨에 관한 112신고가 하루 동안 7건이나 접수되기도 했다. 경찰은 남씨를 부산의료원에 후송해 응급조치한 뒤 본인 동의를 받아 알코올 중독 치료 전문병원에 보냈다. 지금까지 17명의 상습 주취자를 병원으로 후송시켜 8명은 치료 중이며 9명은 귀가시켰다. 7월 23일 후송돼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김모(52)씨의 아들(27·대학생)은 “아버지를 입원시키는 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경찰의 도움으로 치료받게 돼 고맙다”고 경찰에 전했다.

하지만 주취자들의 병원 치료비 부담 등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데는 난관이 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국가가 치료비를 부담한다. 반면 일반 주취자는 응급의료기금 대불 제도를 이용하거나 병원이 결손처리할 수밖에 없다. 지저분한 주취자가 병원응급실에 실려오면서 위생 문제도 제기된다. 정준영 동아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은 위급환자 치료가 목적인데 비위생적인 주취 소란자까지 받는 것은 무리”라며 “주취자를 분류하는 기관을 세워 중증 환자만 병원 응급실로 보내고 단순 환자는 안정을 취한 뒤 돌려보내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중확 부산경찰청장은 “시범운영 결과 드러난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한 뒤 정부에 정책 건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음주 소란 처벌 외국에선 …
미국, 최고 1000달러 경범죄 벌금 … 영국은 36시간 유치장에

대부분 선진국들은 주취자로부터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 미국 내 대부분 주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면 체포해 C급 경범(500∼1000달러)으로 처벌한다. 워싱턴DC에서는 의식 있는 단순주취자는 본인 동의를 받아 자택이나 주취해소센터(Detoxification)로 보낸다. 경찰관의 지시를 거부하면 체포한다. 만취자는 병원으로 후송한다. 자살·자해시도 등 정신적 병세를 보이면 가죽으로 묶는 등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폐쇄병동(CPEP)으로 데려간다. 뉴욕에서는 술에 취해 공공장소를 오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위반하면 체포해 경찰서에 수감한다.

 영국에서는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면 죄질에 관계없이 체포해 주취자 후송용 차량에 태워 경찰서 유치장에서 36시간 구금한다. 만취 소란자를 방치한 주류판매업자에게 1000파운드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일본에서도 공공장소에서 난폭한 행동을 하면 수갑·포승을 사용해 강제보호조치할 수 있다. 경찰서 내 주취자 보호실, 병원, 구호시설에 보낸다. 프랑스에서는 ‘주점 및 알코올 중독 규제법’에 의해 공공장소에서 만취상태로 발견되면 경찰서 주취자 보호실로 보내지고 3000유로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상습 주취자에게는 1년 이하 금고 또는 7500유로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도움말: 부산지방경찰청],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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