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19.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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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9장 갯벌

"목포 낙자 (낙지) 연포탕이 유명해진 것은 코앞에 보이는 압해도 들머리에 갯벌이라는 습지 (濕地)가 있기 때문이랑게. 압해도가 있었기 땜시 목포의 낙자연포가 생겨나서 전국적으로다가 유명해질 수 있었고, 목포라는 소비도시가 코 앞에 있었기 땜시 압해도 뻘낙자란 먹거리가 제 값 받고 팔 수 있게 되었제. 세상이치가 다 그런 것이랑게.

서로서로 기대 사는 거. 니가 있어야 내가 있을 명분이 있고, 내가 있어야 니가 있을 명분도 있는겨. 지 혼자 잘났다고 활개치고 떠들어 쌓는 놈치고 정말 잘난 놈은 없지라. 그건 그렇고…, 압해도 중에도 복용리나 가용리 아지마시들은 맨손으로 갯벌에 구멍을 파고 일 같잖게 낙자를 잡아낸당게.

들물날물의 차가 가장 큰 한사리 때에 압해도 가면 환장나게 장관이지라. 사리 때는 갯벌 바깥 쪽에 있던 낙자들이 들물때를 맞이하려고 앞다퉈 물골로 내려가는디, 그때는 연대장 사열 받으려고 연병장에 좍 늘어선 졸병들처럼 머리를 쳐들고 좍 줄을 서있당게.

그때를 듬직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횃불을 들고 나가서 주섬주섬 어방에 주워 담으면 그게 바로 유명한 압해도 뻘낙자랑게. 큰파하고 무시랑 고추를 힘들이지 않고 설근설근 썰어넣고 낙자를 통째로 넣어 연포탕을 끓여놓으면, 그 달고 구수한 맛이 바위낙자는 발 벗고 따라와도 못따라온당게.

음식이란게 원래 달면 구수한 맛이 신통치 못하고 구수하면 달기가 따르지 못하는 법인디, 압해도 뻘낙자는 달고 구수하고 개운한 맛이 신통하게 어울려서 그야말로 삼위일체여. 사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산란기가 되면, 알에서 깨어난 새끼낙자들이 갯벌을 개미떼처럼 새까맣게 뒤덮을 정도가 되는디, 그 새끼낙자들이 두어달 자라면 바로 세발낙자가 되지라.

그 갯것이 생긴 것은 뼈없이 희물희물해도 폴다리 쑤시고 아픈데 좋고, 정력보신에는 겁나게 좋았뿌러. 나가 여태꺼정 두 마누라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형용이 찌그러지지 않고 배겨나고 있는 까닭이 바로 낙자 때문이랑게. 어디 나뿐이당가.

여자만이란 텃밭이 없었다면 우리 동네 사람들 농사구 뭐구 죄 집어치고 대처로 나가서 쩌그 뭐신가, 도시빈민층인가 그게 돼뿔고 고향 땅이란 게 잡초만 무성하고 인적이 없었을텐디 그나마 썩은 냄새 나는 갯벌에 의지해서 그럭저럭 살고 있지라. "

퍼질러 앉은 방극섭은 부지깽이로 불땀을 일궈가며 여자만 아닌 압해도 낙지를 들먹이느라 입에 거품이 물릴 지경이었다. 그날 밤 일행에게 대접한 것이 그가 자랑했던 고흥 딱돔구이가 아니라 낙지연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사이 유행하는 건 연안개발이다 매립간척사업이다 해서 갯벌 파괴만 일 삼고 있지 않아요. 맨몸으로 나가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갯벌과 바다뿐인데, 섣부른 정치논리가 우리의 생존권과 행복권을 침해하고 모든 것을 망치고 있어요. "

"갯벌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쓰레기매립장쯤 되는 줄 알어. 그래서 그까짓 바지락이나 망둥어 몇 마리 죽는 걸 가지고 중국집에 불난 것처럼 법석들 떠느냐고 티박이여. 하지만 갯것들이 죽고 없으면 물새 한 마리 날아 들지 않을 것이고, 물새도 날지않는 땅에 인종은 무슨 보람으로 살껴? 사람의 형용을 하고 살 수 있간디?

지 가슴에 지 손으로 칼 들이대고 협박하는 꼴인디, 사나운 인종들이 그걸 몰러. 토지공사 멕여 살리려고 망둥어 죽이는 일을 수월하게 저지르다 보면, 망둥어 귀신이 토지공사 잡아먹는 변고가 닥칠텐디. 인종들은 개간이면 덮어놓고 살판 난 줄 알어. 말은 갯벌이 생태계의 콩팥이니 허파니 떠들어 쌓지만, 죄 탁상공론이랑게. 사람은 콩팥 두 개 중에 하나만 있어도 살 수 있고, 이식받아서 살 수도 있지라.

그러나 우리가 의지하고 살어가는 갯벌은 이식 받을 콩팥이 없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자식 바지락 캐 처먹고 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 질러댄다고 할껴. 그런 싸가지 없는 놈들 중에 태반은 지가 뭘 처먹고 살고 있는지도 몰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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