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해외 화랑과 교류 넓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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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내수가 없으면 밖으로 눈을 돌린다.

IMF한파로 경제상황이 위축되면서 국내 미술시장의 불황을 해외 아트 페어 참여로 타개하려는 화랑들의 노력이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다.

작품 판매가 활발해졌을 뿐 아니라 우리 작가들이 외국에 소개되는 기회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쾰른.브뤼셀.샌프란시스코.마이애미 등 각종 아트페어에 참가해온 박영덕 화랑은 지난 7~11일 바젤.FIAC과 더불어 세계 3대 아트 페어의 하나로 꼽히는 아트 시카고에서 14만 달러 (총 22점) 라는 판매 실적을 올렸다.또 가나화랑은 약 6만5천달러 (5점) 어치를 팔았다.

팔린 작품들의 특징은 한국적 모티브를 살렸거나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는 것들. 백남준.황영성.홍정희.함섭.김창영.도윤희.강애란.조성묵씨 등 박영덕 화랑에서 참가한 8명의 작가 중 천연 재료로 물을 들인 한지화 작업을 하는 함섭씨가 80호 이상의 대작 7점이 모두 팔려나가는 솔드 아웃 (sold - out) 을 기록했고, 김창영씨의 모래 그림 역시 5점을 판매했다.

가나 화랑은 최근 해외 아트페어에서 상품성을 입증하고 있는 고영훈씨의 작품을 3점, 김병종씨의 작품을 2점 판매하는 실적을 올렸다.

이같은 성과와 더불어 한국 화랑들이 아트 시카고 참가의 자산으로 꼽는 것은 현지 화랑과의 연계. 함섭씨는 위스콘신과 캘리포니아의 몇몇 화랑으로부터 개인전 타진을 받았고 고영훈씨 역시 오레곤.미네소타 등지에서 전시를 희망해왔다.

박영덕 사장은 "꾸준한 아트 페어 참가로 해외 화랑과 연결되는 것이 당장의 판매보다 큰 수확" 이라며 "장기적 안목에서 작가를 알리고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꾸준히 우리 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해 인지도를 높이고 화랑의 신용을 쌓아올려 미래를 예약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아직 판매가가 외국 화랑들에 비해 낮아 국내 가격이 높은 작가가 상대적으로 시장성이 낮은 현실은 풀어야 할 숙제다.

한편 올해로 19년째를 맞는 아트 시카고는 컨템퍼러리 미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점이 특징. 최근 들어 불붙기 시작한 미국 경기의 활황에 힘입어 미시간호 부근 네이비 피어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5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참여한 화랑도 미국 내 20개 도시를 비롯해 25개국 2백14개에 달한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토마스 블랙먼 협회에서 지난해 창설한 샌프란시스코 아트 페어가 설치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보수적 성격을 띠었던 데 비해 아트 시카고는 개념미술 분야가 두드러진다.

현재 세계 미술계의 흐름이 워낙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 사진이 많이 출품돼 눈길을 끌었다.

블랙먼 회장은 "출품된 작품 대부분이 지난 20년 사이에 제작된 것" 이라며 "혁신적이고 참신한 작품을 선보이는 화랑이 다수 선정됐다" 고 말했다.

또 이름값보다는 작품성을 중시하는 모험심 강한 컬렉터들이 많은 것도 아트 시카고의 특성으로 꼽힌다.

가나 화랑 이학준 국제사업부장은 "이번에 한국작품을 구입한 컬렉터들은 모두 처음으로 한국작품을 접한 사람들이었다" 고 밝혔다.

시카고 =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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