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 지식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새로운 세기를 목전에 두고 지식문제가 으뜸 화두 (話頭)가 되고 있다.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결정적 요소가 지력 (知力) 사회에서는 지식으로 집약되기 때문이다.

아시아 경제위기의 원인을 선진국과 후진국의 지식격차에서 찾는 입장에서는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지식의 선진화가 초미의 관심사다.

게다가 세대교체를 통해 정치개혁을 추진하려는 정치권은 '젊은 피의 수혈' 에 신 (新) 지식인을 포함시켜 지식문제를 정치적 논의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지식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도 명확하지 않고 정부가 의도하는 지식산업의 내용이나 신지식인의 개념도 모호하다.

그 때문에 정부가 추진하는 지식기반 경제의 전략과 내용의 구체성을 잃고 정치적 구호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된다.

지식과 지력의 창출자가 인간인 까닭에 지력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은 인본주의 (人本主義)가 그 중심사상이 돼야 한다.

신 앞에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 19세기적 개념과는 달리, 21세기적 인본주의는 자유.조화.평화를 지향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창조성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의 초점이 되고 있는 신지식인이나 지식은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면 (方法知) 을 강조하는 감이 없지 않다.

인간이 비록 아날로그의 복잡성과 비능률의 결점이 있을지라도 인간적 감성과 창조성으로 인해 디지털 세계의 무 (無) 감정을 초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지식내용에 있어 컴퓨터 암기식의 방법지 (know-how) 보다 고민하는 갈대의 사리지 (事理知.사물의 이치에 관한 지식 : know-why) 를 더 중요시해야 참가치가 창출된다.

외환위기를 넘긴 정부는 중요한 새해 정책방향의 하나로 지식기반 경제의 형성을 강조한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 사회의 지식화가 늦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지식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가치관과 지식문화가 결여돼 지식이나 지식산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족한 데 있다.

지식기업은 우주항공이나 생명공학 산업처럼 특정한 첨단산업에 속한 기업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지식을 활용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면 모든 기업이 지식기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정부의 지식산업 정책은 지식기반 신산업 내지 첨단산업 육성에 치중된 인상이다.

지식기반 경제의 기틀을 세워 21세기 지식사회에서 승자가 되려면 정부는 지식화의 걸림돌을 해결해야 한다.

첫째, 지식인프라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우리의 지식인프라가 취약해 지식투입에 비해 지식성과가 보잘 것 없다.

지식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인 특허출원이나 논문발표 건수, 기술의 성장 기여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너무 형편없다.

정부차원에서 지식이 교류될 수 있는 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미국의 기술상업화센터 (CTC) 나 일본의 가나카와 (神奈川) 고도기술지원재단 등이 바로 기술거래의 활성화를 위한 기관이다.

특히 미국의 CTC는 기술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기업에 제공하며, 나아가 이를 상업화하는 일을 주업무로 한다.

테크노 파크 (techno-park) 같은 산학협동연구센터를 활성화해 기술개발 및 확산의 통로를 다양화해 갈 필요가 있다.

둘째, 새로운 지식을 창조.축적.공유.확산시킬 제도적 인센티브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차원에서는 지식의 소유권을 지키고 보호하며, 기업에서는 개인의 암묵지 (暗默知) 를 조직의 형식지 (形式知) 로 바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지력사회의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협력하고 상생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견제하고 자기만 살려는 우리의 청개구리 문화는 지식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

특히 다국적 기업은 선진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는 좋은 지식저수지다.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배타적 문화를 포용문화로 고쳐야 한다.

우리의 빈약한 기록관행은 기업내 노하우나 지식의 축적과 전수를 어렵게 해 지식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결국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고뇌할 줄 아는 인재를 육성하려면 우리의 교육제도를 획기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

백화점식 암기위주의 교육제도로는 우리의 지식사회 장래는 암담할 뿐이다.

우리 사회의 지식화를 촉진하려면 지식투입도 중요하지만 지식을 창조하고 남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이의 공유와 확산을 지원할 수 있는 지식문화와 제도적 뒷받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김중웅 현대경제연 원장 .경제학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