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과거와의 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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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13일 대구에서 박정희 (朴正熙) 전대통령의 근대화 치적을 높이 평가하고 정부차원에서 기념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朴전대통령의 최대 정적 (政敵) 으로 숱한 탄압을 받았던 金대통령의 이런 긍정적 평가와 기념관 건립지원 약속은, 개인적으로는 용서를 통한 적 (敵) 과의 화해며 국가적으로는 역사와의 화해를 통한 국민 대단합 차원의 정치적 화해정책이라고 평가한다.

돌이켜보면 오늘날 동서갈등의 심화는 박정희시대의 정치적 결과물이다.

두 지도자간 입장 차이가 동서갈등의 골을 깊고 넓게 했다고 본다면, 비록 생사를 달리한 지금이라도 두 지도자간 화해는 동서간의 벽을 낮추는 중요하고도 절실한 것이다.

입으로만 외치는 국민 대단합이 아니라 갈등의 원초를 촉발했던 당사자간 화해가 동서화합을 이루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金대통령의 '과거와의 화해' 가 단순히 총선과 경북지역 여론 무마를 위한 일시적 정치발언으로 그쳐서는 안된다고 본다.

여론을 의식한 일회성 발언이 아니라 앞으로 정치와 정책에서 그런 화해와 대단합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우리 현대정치사는 독재와 반독재의 대결 구도속에서 새 정권이 태어나면 구정권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金대통령의 과거와의 화해는 향후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제대로 된 정치사로 자리잡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박정희기념관 못지않게 초대대통령 이승만 (李承晩) 기념관 건립의 중요성도 일깨우고 싶다.

정치지도자의 공과 (功過) 란 언제나 병행한다.

말기 독재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독립과 국가건설을 위한 헌신은 초대대통령으로서 기념해야 마땅하다.

건국대통령의 기념관 하나 없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정통성을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통령 기념 자료관 또는 도서관 건립 자체가 역사의 정통성을 회복하면서 국가지도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교훈장을 세우는 역사작업이다.

미국 국가기록보관소인 내셔널 아카이브 산하에 대통령 기념자료관이 있다.

헌금과 정부예산으로 건립.운영된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자료는 국가가 보관해야 할 귀중한 자료다.

훼손할 수도, 왜곡해도 안되는 사료다.

이 역사적 자료를 소중히 보관하고 후세의 평가를 받아야 국가지도자들이 전횡을 할 수도, 거짓말을 할 수도 없게 된다.

이승만.박정희 기념관이 단순한 추모차원의 기념관이 아니라 역사적 자료를 보관.정리하는 '역사 법정 (法廷)' 으로 기능해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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