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록밴드 '천지인' 세상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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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천지인은 "진짜 약자인 장애인, 이주 노동자를 위한 무대에는 계속 서겠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1990년대 대학 운동권은 이리저리 치였다. 386 선배들은 "너희가 광주를 아느냐"고 물었고, 바깥 세상에선 "이제 운동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민중 가요판도 마찬가지였다. 93년 데뷔한 운동권 록밴드 '천지인'은 집회 현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판에 박힌 민중 가요 속에서 그들의 음악은 세련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중가요란 숭고하고 순수해야 한다'고 고집하던 선배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고 강산은 확 변했다. 386은 주류로 흘러들었고, 노동 운동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 비난 받는다. 민중 가요보다 더 살벌하게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는 널리고 널렸다. 그런 와중에 천지인이 오버그라운드 데뷔를 선언했다. 그들은 "우리는 그대로지만 우리가 설 자리는 변했다"고 말했다. 오버그라운드 데뷔 앨범은 10년을 정리하는 베스트 음반 격이다.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청계천8가)''세상은 그리 어두운 것만은 아냐(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등 옛 노래를 현대적으로 편곡해 실었다. 사람에 대한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이 담긴 천지인의 10년 묵은 음악은 세상을 마구잡이로 비판하는 노래가 쏟아지는 중이라 더 돋보인다.

이경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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