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 위장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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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국회 인사청문에 들어간 총리·장관·대법관 후보자 다수가 위장전입의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귀남(법무)·임태희(노동) 장관,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가 사실을 시인했다. 자녀 진학, 장인 선거의 지원, 부인의 사원 아파트 분양 등 사유도 다양하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는 부인의 위장전입 의혹을 받고 있다. 현직 장관 중에서도 청문회 때 위장전입이 드러난 경우가 있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37조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위장전입은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다. 1970년대 이래 부동산과 자녀 교육이 생존의 양대 과제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를 위해 거짓으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국가의 법·행정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법행위임에도 많은 이가 ‘생활’이라는 합리화 뒤에 숨어 죄의식 없이 이 일을 저지르곤 했다. 사법당국의 의식이 미약하고 행정전산체계도 미흡해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병은 만연됐고 많은 이가 걸렸다. 한때 폐결핵을 앓았던 환자의 X레이처럼 지금 흔적이 여지없이 찍혀 나오는 것이다.

위장전입의 가장 씁쓸한 점은 이 병이 주로 지도층 또는 중산층 이상에서 퍼졌다는 것이다. 대다수 서민은 자녀를 좋은 학군에 보내거나 아파트·토지를 살 능력이 없어 아예 위장전입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지도층은 다르다. 위장전입은 정계·관계·학계·언론계를 막론하며 정권의 구별도 별로 없다. 김대중 정부에선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자가 이 문제 등으로 낙마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인의 위장전입 의혹에 휘말렸다.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 과거의 위장전입(자녀 교육)에 대해 사과했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법원조차 위장전입 사례가 적지 않다. 얼마 전 청문과정에서 사퇴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와 그의 대안으로 총장이 된 김준규 후보자도 곤욕을 치렀다. 김 총장은 자녀 교육 문제로 네 차례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청문회에서 조순형 의원은 “2007년의 경우 1500여 명이 위장전입으로 입건됐다”며 후보자를 추궁했다. 후보자는 침묵하거나 사과해야 했다.

이러한 모습들은 분명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위장전입뿐이 아니다. 논문 이중 게재, 소득 미신고와 탈세 등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러한 단골 메뉴가 다시 나오고 있다. 서민들이 느낄 박탈감과 소외감은 훨씬 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들을 엄격한 잣대로 털어내다 보면 흠집 없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딜레마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 한다. 수십 년간 만연돼온 이 병을 고쳐야 한다. 특히 공직에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여 언제 어떤 자리에 서더라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부끄러운 청문회를 목격하면서 한국 사회가 얻을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