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명동성당 주임신부의 고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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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지하철노조의 총파업 투쟁을 지켜보는 명동성당 백남용 (白南容) 주임신부의 마음은 착잡하다.

26일로 이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인지 9일째. 주임신부가 된지 5개월이 지났지만 이런 대규모 농성은 그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다.

"성당측이 지하철 파업을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때면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

성직자로서 사회적 약자를 감싸안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며칠씩 밤샘농성을 하는 노동자를 바라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크고 작은 시위 가운데는 집단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도 많았고 참석자들이 성당 내에서 술을 마시고 노상방뇨를 하는 사례마저 없지 않았다.

그동안 신도들의 항의전화도 하루에만 10여차례씩 걸려왔다.

수녀원과 고해소에서도 "기본적인 신앙활동을 할 수 없다" 며 몇번이나 하소연을 해왔다.

공권력 투입에 대비하기 위해 노조원들이 성당 정문을 막아 신도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는 과연 성당이 누구를 위한 곳인가 다시금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지난 주말 성당 내에서 치러진 신자 여섯쌍의 결혼식에 노조가 협조해 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하객들의 주차에도 신경써 주고 노조 차원에서 축의금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26일 0시까지 체포영장이 발부된 노조 지도부들을 위한 천막 두개 동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철거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노조의 버티기에는 그도 답답하기만 했다.

白신부의 눈빛은 고뇌에 차있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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