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컴 前주한미군사령관 회고록 단독 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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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벼랑끝의 한국: 12.12사태에서 광주항생까지' [요지]

[워싱턴 = 길정우 특파원]79년 12.12사태 직후 신군부를 뒤엎으려는 역 (逆) 쿠데타 움직임이 한국군 내부에 있었다고 존 위컴 (70)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밝혔다.

위컴은 본지가 사전입수한 자신의 회고록 '벼랑끝의 한국 - 12.12사태에서 광주항쟁까지' 에서 이같이 술회했다.

'역쿠데타' 움직임과 관련, 당시 주한미군의 최고위관계자가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컴 장군은 또 신군부 장군들의 '쿠데타 움직임' 을 한국군 퇴역장성으로부터 사전입수, 이를 당시 노재현 국방장관 등 수뇌부에 전달했으나 그들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위컴의 회고록 요지.

◇ 12.12 쿠데타 사전정보 믿지 않았던 한국 군부 = 79년 '10.26사건' 후 며칠만에 다시 만난 노재현 국방장관은 전에 비해 훨씬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나는 11월말부터 한국군부내 일부 소장파 장성들의 움직임에 관한 불길한 정보들을 접하고 있었다.

내게 정보를 건네준 이들 가운데 한 인물은 합참의장을 지냈던 이형근 대장이었다.

李장군은 "일부 소장파 장성들이 박정희 대통령 사후 정부가 일부 야당인사들의 사회불안 조장 언행을 방관하고 있는 데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고 전했다.

李장군은 그들이 육사 11기부터 13기 출신들이라고 전했을 뿐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치는 않았지만 이들을 추측하긴 어렵지 않았다.

12월 4일 나는 盧장관에게 李장군과 나눈 심상치 않은 대화내용을 전달했다.

盧장관은 "李장군을 비롯해 당신의 소식통들은 한국 군부내 정서를 잘 모르는 것 같소" 라며 거듭 자신감을 표명했다.

◇ 역쿠데타 기도 = 12월 어느날 이른 아침 유엔사 본부내 집무실에서 나는 예상치 않았던 방문객과 마주앉았다.

그는 서울에 주둔하고 있어 군부내 정황에 정통했다.

그는 대화에 대한 비밀보장을 누차 요구한 뒤 배석자 없이 비교적 유창한 영어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12.12사태에 대한 미국측 입장을 문의한 뒤 느닷없이 "미국은 역쿠데타를 지지할 준비가 돼있는가.

역쿠데타의 목적은 전두환 일당을 축출하고 적법한 민정 (民政) 과 군의 권위를 회복하는 데 있다" 고 털어놓았다.

나는 "미국은 쿠데타를 지지할 입장에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에 반대하는 또다른 한국 군부내 활동을 지지하지도 않을 것" 이라고 답했다.

(그후 그의 이름은 전두환 장군이 주도했던 군부 개편의 살생부에 빠져 있음을 알고 그들의 모사가 사전에 발각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

◇ 미국의 입장에 예민했던 전두환 장군 = 全장군은 군부내 역쿠데타 가능성에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며 특히 이들이 미국 정부나 군부측 인사에 접근할까봐 심히 우려했다.

당시 연합사 내 사무실에는 한국군 육군 중령 하나가 새로 배속돼 왔다.

그런데 몇주일 지나 그가 연합사 미측사무실내 서류철을 뒤적이는 것이 목격됐다.

조사 결과 그는 全장군의 보안사 소속장교였고, 연합사내 정황을 보안사에 수시로 보고해 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미국의 입장에 예민했던 全장군은 한국 근무 경험이 있는 미군부내 안면이 있는 장성들에게 개인서한을 보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미측의 이해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全장군의 이같은 행동은 명백히 군명령체계를 무시한 것이었다.

◇ 광주사태 이후 全장군의 언론 플레이 = 80년 8월 8일 한국 정세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온 AP통신 테리 앤더슨 등 두 기자의 인터뷰에서 나는 함정질문에 빠져들었다.

앤더슨 기자는 내게 全장군이 한국의 대통령이 될 것인지 또 미국은 그를 승인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나는 "全장군이 적법절차를 통해 한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집권하고 그가 한반도 정세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면 미국은 그를 지지할 것" 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들 두 기자는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에게 인터뷰 내용을 전해주었다.

全장군측은 당시 내가 제시했던 전제조건들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채 한국언론을 통해 미 정부가 자신의 집권을 승인했다는 식의 언론 캠페인을 벌였다.

[위컴 前사령관은…]

79년 7월부터 82년 6월까지 주한 유엔군 사령관을 지낸 그는 재임 당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와 갈등을 빚었다.

그는 당시 신군부가 미군측을 무시하려는 행동을 하자 "날 뭘로 보느냐" 며 반발하기도 했다.

베트남전 때 보병대대장으로 참전한 바 있는 그는 육군 작전기획참모부장.합참본부장.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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