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야 할 주식, 팔라고 하지 못하는 증권사 보고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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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호 24면

김군호 FN가이드 사장은 “감에 의존한 투자가 아니라 과학적·합리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금융 데이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자료: FN가이드’.
낯익은 문구다. 당신이 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면. ‘애널리스트 보고서 뒤에는 FN가이드가 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다. FN가이드에는 모든 국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보고서가 있고,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상장기업의 실적 정보도 있으며, 애널리스트 추정 이익과 목표주가 등 투자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가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10돌 맞은 금융 데이터 유통업체 FN가이드 김군호 사장

FN가이드가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2000년 7월 정보기술(IT) 버블의 끝자락에서 설립돼 살아남았다. 설립 당시부터 회사를 이끌어온 김군호(48) 사장을 만나 한국의 데이터 산업과 애널리스트 보고서 활용법 등에 대해서 들어봤다.<※는 편집자 주>
 
-회사가 생소하다. 어떤 일을 하나.
“국내 유일의 금융 데이터 유통업체다. 국내에서 데이터 관련 업체라면 한국신용평가정보 등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데이터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 데이터 업체와 다르다. 올 매출이 7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국내 데이터 산업 전체 매출은 연 500억~600억원 정도다.”

-그래도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
“톰슨로이터·블룸버그 등을 떠올리면 된다. 1851년에 로이터(※로이터는 2008년 톰슨과 합병했다), 1860년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만들어졌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선 정보가 필수다. 돈을 주고서라도 금융 데이터를 사 보니까 시장이 커졌다. 톰슨로이터는 금융은 물론이고 교육·의료·법률 관련 데이터까지 다룬다. 그중 금융 부문의 매출만 연 70억 달러(약 8조7000억원)에 이른다.”

-그럼 옛날엔 어떻게 데이터를 관리했나.
“1980년대 증권거래소 공시실에 가면 복사해 놓은 재무제표·사업보고서 등이 있었다. 그 이전 것은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했다. 거기서 지분구조·영업이익 등을 연필로 적어 베꼈다. 개인 컴퓨터로 데이터가 관리되다 보니 전임자가 떠나고 나면 기업 실적 자료도 사라져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야 했다.”

-수익은 어디에서 나오나.
“매출액의 90%가 월정액으로 들어오는 데이터 이용료다. 그중 웹사이트인 FN가이드닷컴의 아이디(ID) 사용료로 들어오는 돈이 40% 정도다. 가장 싼 ID 이용료가 30만원이다. 보통 기업들은 70만원짜리를 쓴다. 회원으로 400여 개 금융회사가 가입해 있다.”

-외국 업체와 비교했을 때 FN가이드의 강점은.
“속도다. 데이터를 빨리 업데이트한다. 실적이 나오면 그날 바로 수정한다. 애널리스트가 오늘 낸 보고서에 들어간 목표주가도 저녁이면 컨센서스(※평균치)에 반영한다. 외국에서는 그런 작업이 일주일은 걸린다.”

-약점은 무엇인가.
“글로벌 데이터가 없다. 삼성전자와 인텔을 비교하고 싶은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인력을 늘려 내년부터는 20개국 1만 개 외국 기업의 실적 데이터를 보강할 계획이다. 또 외국계 전문 독립 리서치센터 1곳과 중국 증권사의 보고서를 사이트에 내년 초에는 올릴 예정이다.”

-앞으로의 중점 사업은.
“인덱스 펀드 부문이다. 현재 30여 개의 인덱스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정보를 운용사에 서비스한다(※인덱스 펀드는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시가총액에 따른 투자 비중 계산이 필수다. FN가이드는 이런 데이터를 운용사에 제공해 주고 운용사로부터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다). 설정액 기준으로 7600억원 규모다. 현재 인덱스 펀드는 국내 펀드 시장의 6%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장성을 감안하면 새로운 캐시카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좋다는 애널리스트를 그만두고 회사를 차린 이유는(※그는 2000년 6월까지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으로 일했다).
“외국인이 왜 자기 텃밭인 한국인들보다 한국에서 투자를 잘하는지 의문이었다. 80년대 말 미국 주요 증권사를 방문해 보니 이유를 알겠더라. 우리가 감에 의존해 투자한다면 외국인은 주가수익비율(PER)·주가순자산비율(PBR) 등을 따져 투자했다. 전세계 기업들의 주요 데이터는 다 보고 있었다. 회사에 데이터베이스센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거절당했다. 그러다 2000년 그룹 차원에서 신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다시 데이터사업을 제안했다. 사내 벤처 형식으로 회사가 꾸려졌다. 3년 하고 나니까 자본금 65억원을 다 써버렸다.”

-그런데 올해로 창립 10주년이다.
“삼성그룹이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2004년 현재 대주주(※화천기계)가 그룹 쪽 지분을 인수했다. 금융 데이터를 취급하는 업체가 특정 금융기관에 소속돼 있다면 신뢰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곳에 투자를 부탁했었다. 그간 돈을 까먹었지만 분명히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확신했다. 다행히 2005년부터는 흑자로 전환해 지금까지 매년 수익을 내고 있다.”

-그때 투자자를 못 찾아 사업을 접었다면.
“금융 데이터 시장이 글로벌 업체에 완전히 종속됐을 거다. 현재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데이터 산업을 통제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 내 데이터 업체가 모두 죽었다. 우리 회사의 정보이용료는 글로벌 업체와 비교했을 때 매우 싸다. 또 한국 사람이 쓰기 편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없었다면 국내 금융회사들은 비싼 돈을 주고 불편하게 데이터를 이용했을 거다. 앞서 2005년까지 톰슨은 국내 증권사 보고서를 자기네 시스템에 올려주는 대가로 되레 국내 증권사로부터 돈을 받기도 했다.”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하루 300여 건, 1년에 수만 건의 보고서가 올라온다. 그런데 이 바닥이 홍길동 나라다. ‘매도’를 ‘매도’라 말하지 못한다. 보고서를 잘 읽고 숨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 ‘매수’라고 해놓고 보고서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주가 탄력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등의 말을 써놓으면 팔라는 얘기다. 애널 보고서가 홍길동 나라가 된 건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 여기에 우리 역할이 있다. 현재 매년 하고 있는 애널 평가를 강화해 정확한 투자 의견을 내는 애널이 대접받도록 하겠다. 회사 영업에만 도움되는 이들이 대접받는 시대는 끝나야 하지 않겠나.”

-어떻게 해야 투자에 성공하나.
“시장을 사라. 적립식으로. 뻔한 말이긴 하다. 그래서 지키기 힘들다. 그래도 그게 답이다. 계산을 해봤다. 2007년 10월 31일 코스피 지수가 2046까지 갔던 그날부터 매월 10만원씩 투자했다고 치면 지금 지수가 고점에 못 미치지만 10% 넘게 수익이 났다. 인덱스 펀드에 적립식으로 장기 투자하면 최소한 손해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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