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요다9단, 23일 춘란배 8강서 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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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창호대 요다 노리모토 (依田紀基) 의 한판승부에 바둑계의 이목이 쏠리고있다. 오는 23일 중국 우한 (武漢) 의 동방대주점 (東方大酒店)에서 벌어질 제1회춘란배세계바둑선수권대회 8강전. 중국이 모처럼 15만달러라는 거액의 우승상금을 내건 이대회서 두사람은 준결승 티켓을 놓고 격돌한다.

세계제일의 이창호9단에게 6승1패의 압도적인 전적을 거두고있는 일본의 요다는 진짜 이창호의 천적일까. 그렇다면 최강 이창호와 천적 요다의 대결은 과연 어떻게 끝날 것인가.

8강전에 한국은 이창호9단외에 조훈현9단.유창혁9단.최명훈6단등 국내랭킹 1~4위의 강자들이 고스란히 올라가 진을 쳤다.

상대기사는 중국과 일본 각 2명. 조훈현9단은 중국의 신예강자 저우허양 (周鶴洋) 7단과 대결하고 유창혁9단은 중국랭킹1위 창하오 (常昊) 8단, 최명훈6단은 일본의 왕리청 (王立誠) 9단과 각각 맞선다. 8명의 명성이나 실력을 볼 때 한국대표팀과 중.일 연합팀의 정면대결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풍운이 감도는 결전장 동방대주점에 미리 가본다.

◇ 조훈현대 저우허양 =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조9단이 우위에 있다. 그러나 40대 후반의 조9단에 비해 신예 저우허양은 상승일로여서 조9단의 필승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기풍으로 볼 때 온건한 저우허양은 조9단의 강펀치가 힘에 겨울 것이다. 두 기사는 이 판이 첫 대면.

◇ 유창혁대 창하오 = 지금까지 두사람은 1승1패의 호각세. 중국의 젊은 1인자 창하오는 국내에서 마샤오춘9단에 간발의 차로 앞서고 있지만 이달초의 후지쓰배에서는 목진석4단에게 꺾인 일이 있다. 전력은 비슷한데 쌍방 기복이 있어 당일의 컨디션이 승부를 좌우할 것이다.

◇ 최명훈대 왕리청 = 지난해 LG배 준결승에서 王9단은 최6단을 꺾고 결승에 올라 유창혁9단을 3대2로 제치고 우승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王의 우세. 그러나 王9단은 조치훈9단에 대한 도전실패후 약간 슬럼프여서 좋은 싸움이 예상된다.

◇ 이창호대 요다 노리모토 = 표에서 보듯 이9단은 지금까지 1승6패의 참담한 전적을 거두고 있다. 두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이창호가 16세 때인 91년. 외국이 싫고 비행기 타기가 싫었던 시절인지라 1승3패의 전적에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93년 봄 동양증권배에서 서울에 온 요다는 이창호와 치열한 끝내기싸움을 벌여 1집반을 이겼다. 요다라는 사람을 다시보게 만든 일전이었다. 이 해 여름에도 이창호는 요다에게 또 져 1승5패.

요다는 이창호 뿐 아니라 한국의 4인방에게도 우세한 전적을 보여 '한국킬러'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일본에선 종주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요다를 '일본의 자존심' 이라 부르기도 했다. 세계1인자로 커버린 이창호는 요다와의 재회를 학수고대했으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98년 8월. 속기인 TV아시아선수권에서 두사람은 다시 만났다. 꼬박 5년만이었다. 패배를 결코 잊지않는 이창호는 속으로 필승을 다짐했으나 결과는 또다시 반집패. 하지만 얼마전 일본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 요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창호는 무적이다. 현대의 기사중엔 그를 꺾을 실력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 '천적' 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연의 일치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같은 그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요다는 점점 강해지는 이창호의 바둑에 진심으로 감복하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말할수록 이창호의 부담감은 더욱 쌓여간다. 출전에 앞서 이9단은 "요다를 잊을 수는 없지만 의식하지는 않겠다. " 고 했다. 이런 오랜 사연 탓에 두사람의 일전이 더욱 기다려진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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