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민족운동 위해 유학생들 '아리랑' 상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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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단성사의 극장 광고 전단. ‘금주 프로그램’으로 영화 ‘개척자’와 신극.협극.무용.노래 등을 소개하고 있다.

▶ 이규환 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의 전단. 영화제목이 ‘정춘삼’으로 바뀐 사실과 주제가 전문이 실려있다.

▶ ‘재만피란동포구제회’가 일본 도쿄에서 주최한 ‘우리 영화와 음악의 밤’행사 전단.

한국영화 태동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 전단 100여장이 발견됐다.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이 전단들은 국내 영화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개인수집가 김응수(金應秀.48)씨는 "최근 다른 수집가로부터 1930년대 영화나 연극 등을 홍보하는 전단을 구입했다"며 이 중 일부를 17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이규환(1904~82)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1932년 작) 전단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영화 주제가 전문이 실려 있고, 제목 옆에 '(改題) 鄭春三'이라는 변경된 제목이 적혀 있다.

상명대 조희문(영상학부)교수는 "그동안 '정춘삼'이라는 제목의 전단이 발견됐지만 이렇게 제목이 바뀐 사실이 이규환 감독의 회고담 등에 전혀 나오지 않아 같은 영화인지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이 전단들은 초창기 한국영화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한국영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나운규(1902~37)의 '아리랑'과 '두만강을 건너서'가 일본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주도한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상영됐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전단도 있다.

전단에는 재일동포들의 모임인 '재만피란동포구제회'가 도쿄 한복판 긴자에서 '한국영화와 음악의 밤'이라는 유료 상영회를 주최하면서 메이지(明治)대학과 제국(帝國)음악학교 등 재일 한국학생들의 노래와 연주회를 곁들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전단에 실린 안내 글은 만주사변의 와중에 80만 만주동포가 학살과 기아에 고통받는 현실을 처절한 문구로 호소하면서 나라 없는 민족의 비통함을 전하고 있다.

일제하 우리 유랑민들의 독립정신을 우회적으로 소개한 '두만강을 건너서'는 두만강이 독립군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한 일제의 검열로 바뀐 제목인 '저 강을 건너서'로 전단에 소개됐다.

국내 최초의 현대식 극장인 단성사에 대한 홍보 전단도 눈에 띈다.'요사이 단성사의 문앞은 이러하다'라는 제목의 전단에는 '금주프로그램'으로 조선영화 '개척자', 신극 '북극의 사랑', 그리고 '무용과 음악도 있습니다'라는 말이 씌어 있다. 입장료는 입구 계단의 위와 아래, 대인과 소인으로 구분해 70~30전이었다.

이후남 기자

<전단 상세 화보는 www.joongang.co.kr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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