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대림.한화 유화빅딜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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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역시 이솝 우화처럼 강풍보다는 태양의 위력이 강한 것인가.

반도체를 비롯,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주요 업종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은 진통을 거듭하는 가운데 대림과 한화가 자율적으로 통합법인 설립과 사업 맞교환을 골자로 하는 빅딜을 전격 성사시켜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정부가 굳이 강요하지 않더라도 기업들 스스로가 생존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진짜 빅딜' 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 두 회사는 어떻게 되나 = 빅딜의 주요 내용은 중복되는 사업부문의 통합과 맞교환 등 두가지. 우선 양사가 중복운영해 왔던 나프타분해공장 (NCC) 을 분리, 50대50 동일지분으로 통합법인을 설립, 공동운영키로 했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통합법인은 연 1백22만t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보유, 현대석유화학 (1백만t) 을 제치고 국내 1위 업체가 된다.

또 대림은 석유화학 중간재인 폴리프로필렌 (PP) 과 고밀도폴리에틸렌 (HDPE) 전문사로, 한화는 저밀도폴리에틸렌 (LDPE) 과 선형 LDPE 전문사로 변신하게 된다.

양측은 비슷한 규모의 공장을 맞교환하기로 했기 때문에 현금은 전혀 오가지 않는다. 또 두 공장은 모두 전라남도 여천 석유화학공단에 인접해 있어 간단히 말해 간판만 바꿔달면 될 정도다.

때문에 향후 실사과정에서 다른 빅딜처럼 가격산정 등의 갈등을 빚을 소지는 크지 않다. 또 양사는 해당 사업부문의 직원도 전원 고용승계키로 해 노사문제도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 빅딜 배경은 = 한화 김승연 (金昇淵) 회장은 14일 합의서 교환후 "대림과 한화는 지난해 연말부터 지금까지 5개월에 걸쳐 협상을 벌여 왔다" 고 밝혔다.

이들이 자율 빅딜을 추진하게 된 것은 세계적으로 석유화학업체들이 기업 인수.합병 (M&A) 을 통한 대형화.전문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국내는 공급과잉 상태라 이대로는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

나프타의 경우 삼성.현대.LG 등 8개 회사가 경합하는 바람에 밀어내기식 수출까지 등장하고 있다. 게다가 다른 업종과 달리 유화부문은 공장을 놀릴 수 없어 가동률을 90% 이상 유지하다 보니 원가부담이 늘어 나프타 분야에서는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때문에 대림과 한화는 나프타 통합에서만도 원가절감.품질향상.재고감축 등 시너지효과를 통해 연간 6백억원 이상의 수익개선 효과를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향후 설비투자에서도 1천억원 이상의 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두 회사가 생산규모는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관련 제품의 국내 공급에는 별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또 이번 빅딜 과정에는 호남석유화학도 협상에 동참했다 조건이 안맞아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 예상되는 영향 = 나프타 통합 법인은 아시아 최대, 세계 10위권에 들며 다른 분야도 세계 10위권 진입이 가능해졌다. 또 현재 진행 중인 현대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간 통합은 물론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 등이 경쟁하고 있는 유화업계의 구조조정을 가속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LG화학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특별한 계획이 없지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 말했다.

SK㈜와 대한유화가 있는 울산단지는 아직은 잠잠하지만 빅딜 바람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 전경련 관계자는 "이번 자율 빅딜로 인해 반도체.자동차 부문과 철도차량.항공기.발전설비 등 7대 업종의 구조조정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 이라고 말했다.

이수호.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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