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지도가 바뀐다]지곡서당파 임창순옹은 누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4.19 당시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로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 는 플래카드를 손수 쓰는 등 교수단 시위를 주동했던 임창순옹은 61년에는 민족자주통일협의회 사건으로 서울 중부서에서 2달간 구류를 살았다.

그때 김대중 현 대통령과 15일간 같은 방에서 지내기도 했다.

이후 대학에서 쫓겨나 이 시대 최고의 한학자로서 재야에 묻혀 오늘의 지곡서당을 이끌어 왔다.

"청명선생에게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평소에는 흔히 학생들과 밤을 새워 내기바둑을 두셨지만 일단 강 (講) 이 시작되면 보통 엄격한 훈장이 아닙니다. 선생님 앞에서 논어 암송을 시험받는 날이면 아침부터 온몸이 바짝 긴장되곤 했지요. "

지곡서당 1기 졸업생이며 83년부터는 지곡서당 강사로, 오랜 기간 任옹과 고락을 함께 한 한림대 이광호 교수는 任옹에게서 엄격한 카리스마와 따스한 인간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제자에 대한 사랑이 끔찍할 정도인 그는 제자와 담배를 나눠피울 정도로 벽이 없이 지낸다.

뛰어난 금석학자이기도 한 任옹에 대해 제자들은 "정교한 과학성과 세련된 예술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선비" 라고 입을 모은다.

5기생 김만일 교수는 "앎과 삶이 조금도 다르지 않게 일평생을 살아온 그의 삶이 후학들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하는 힘" 이라고 덧붙인다.

任옹은 지난 2년간 건강이 좋지 않아 강의를 못했다.

올해는 휴대용 마이크를 달고 의자에 앉아서라도 강의하겠다는 각오로 '장자' 를 격주 4시간씩 강의하고 있다.

고규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