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영화판, 징하요(2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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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 컬러영화 첫발

60년대 중반 신성일씨가 주연한 영화 중엔 기억될만한 작품이 두어편 있다.

그중 먼저 꼽을만한 작품이 '나는 왕이다' (66년) 다.

세기상사 제작으로 장석준 기사가 따라 붙었다.

태현실과 김승호가 함께 출연했다.

이 영화는 특이한 소재로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스포츠 영화였다.

내가 지금까지 만든 96편의 작품 목록중에도 스포츠 영화는 이게 유일하다.

이 작품을 하면서 나는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었다.

적어도 좋은 스포츠 영화를 찍기위해서는 다루려는 종목에 대해서 만큼은 해박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종목만이 갖는 극적 순간을 영화상의 줄거리와 시각적으로 조화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왕이다' 말고 신성일 주연영화로 생각나는 두번째 영화는 사극 '요화 장희빈' (68년) 이다.

이 영화는 내 첫번째 컬러영화여서 기억이 더욱 새롭다.

67년 '망향천리' 를 끝으로 나는 흑백영화에서 손을 뗐다.

'요화 장희빈' 에는 남정임과 태현실이 같이 나왔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장희빈 역은 남정임 몫이었다.

이 작품은 나와 인연이 없지 않았다.

61년 스승 정창화 감독이 만들어 대단히 히트한 작품이었기 때문. 그때 나는 제1 조감독을 맡고 있었다.

게다가 이 작품을 찍으면서 정감독과 사소한 말다툼 끝에 틀어져 조감독 시절의 마지막 작품이 됐으니 감회가 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명백한 실패작이었다.

60년대 작품중 만족스런 게 별로 없는 것은 매일반이지만 이 작품은 더했다.

컬러필름의 감도도 안좋았고, 조명기재도 충분치 않아 색채도 엉망이었다.

촬영은 그렇다치더라도 내 연출 또한 엉성했다.

이전 정감독 작품의 좋은 부분을 똑같이 답습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일을 크게 그르쳤다.

좋은 모방도 창조란 걸 그때는 몰랐다.

이 작품의 실패를 계기로 사극을 리메이크할 때는 반드시 새로운 시각을 투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요화 장희빈' 의 실패를 딛고 나는 그해 입체영화에도 도전했다.

제일영화사가 제작한 '몽녀' (김지미.박노식.남정임등 출연) 였다.

나와 오랫동안 콤비로 일해온 장석준 기사가 당시 입체영화 기재를 개발했다.

그는 '몽녀' 바로 직전 이규웅 감독의 '천하장사 임거정' 에서 그 수준을 처음으로 실험한 뒤 내 작품에 두번째로 적용했다.

신봉승씨가 각본을 쓴 이 작품은 입체영화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서스펜스 공포물로 기획됐다.

이야기의 발단은 조총련계 인물이 여간첩을 사주해 국내 거물급 실업가를 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작품도 시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어떻게 된게 다 찍고나서 보니 입체장면이 별로 없는 이상한 입체영화가 돼 있었다.

주인공의 눈에 환각이 덮쳐오는 장면은 일종의 속임수였는데 내가 보기에도 어린애들 장난처럼 유치하기 짝이없었다.

새로운 도전에서의 연속 실패한 낭패감. 이때 다소 의기소침해 있던 나에게 액션영화 '돌아온 왼손잡이' 가 힘을 실어주었다.

쑥스러운 일이지만, 일부 평론가들이 60년대 B급 액션영화의 최고 걸작이라고 꼽는 작품이다.

액션영화의 미덕들이 그런대로 골고루 섞였다는 평이다.

출연진도 화려해 당시 액션의 최고스타 박노식을 비롯, 김지미.허장강이 호흡을 맞췄다.

항구도시를 무대로 펼쳐지는 정처없는 풍운아들의 우정과 애환은 17.8세 소년기 집을 나와 부산에서 고단한 삶을 꾸려나가던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글= 임권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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