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추락한 스텔스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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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먼 곳에 있는 항공기와 함선 (艦船) 을 탐지하는 레이더 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30년대다.

영국은 가장 먼저 항공기에 장착이 가능한 레이더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영국과 미국은 합동으로 전함의 자동사격통제와 항공기 요격용 레이더를 개발했다.

레이더는 연합군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반 (反) 레이더기술 개발은 레이더 발명 직후부터 시작됐다.

독일 잠수함 U보트는 환기장치에 레이더파를 흡수하는 특수재를 칠했다.

제2차대전 종전후 레이더 반사파 (反射波) 의 성질이 발견되면서 반사율을 크게 낮춤으로써 레이더를 피하는 방법, 즉 스텔스기술 개발이 시작됐다.

베트남에서 소련제 지대공미사일에 혼났던 미국은 70년대 말 스텔스기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스텔스 전폭기 F - 117이 미 공군에 인도된 것은 82년이지만 계속 베일에 싸여 있었다.

F - 117이 처음 선보인 것은 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때다.

그러나 본격적인 활약은 91년 걸프전에서다.

F - 117은 이라크의 방공망을 뚫고 수도 바그다드 시내 깊숙이 침투해 표적 1m 이내에 폭탄을 명중시켰다.

F - 117은 기체 표면에 레이더파를 흡수하는 검은색 특수도료를 바르고, 레이더파 반사율을 낮추기 위해 표면을 각 (角) 이 지도록 설계했다.

또 레이더에 잘 포착되는 동체 (胴體) 를 감추기 위해 날개와 동체를 구분하기 힘들게 만들고, 무기도 기체 안에 집어넣었다.

이밖에 열추적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엔진 배출열을 외부의 냉기와 혼합시켜 밖으로 내보낸다.

F - 117의 최대 약점은 느린 속도 (마하 0.9) 다.

표면에 입힌 도료 때문에 기체가 무겁기 때문이다.

덩치가 커 육안으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의 눈을 피해 어두운 밤에 주로 활동한다.

F - 117에 '나이트 호크 (밤의 매)' 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빗물에 약한 것도 단점이다.

걸프지역과 같은 건조한 사막은 몰라도 일기 변화가 심한 산악지방에선 불리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의 유고에 대한 공습작전을 수행중인 F - 117 12대중 한 대가 추락했다.

유고 국민들은 스텔스기 격추 소식에 크게 사기가 올랐다고 한다.

일부에서 공습작전이 사실상 실패라는 비판이 나오는 등 가뜩이나 일이 꼬이는 판에 격추할 수 없는 비행기라던 스텔스 신화마저 추락함으로써 나토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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