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아날로그 물벼락’에 허 찔린 ‘첨단 디지털 국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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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임진강 수위가 급상승한 것을 파악하고도 상급부대에만 상황이 전달됐던 지휘통제시스템이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임진강 필승교 지역에서 보초를 서던 초병은 오전 2시50분쯤 수위가 급격히 오른 장면을 목격했다. 이 초병의 보고는 상황실을 통해 연대→사단→군단을 거쳐 합참에 전달됐다. 보고를 받은 해당 사단은 오전 3시10분쯤 필승교에 설치된 스크린을 들어 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스크린은 북한군의 수중 침입에 대비해 임진강에 설치한 일종의 철조망이다.

중앙119구조대 대원들이 7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남교 부근 임진강에서 수중 다방향 카메라를 이용해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구조대원 뒤로 보이는 장남교 교각에 갑자기 불어난 물에 뿌리째 떠내려 온 나무들이 걸려 있다. [파주=김도훈 인턴기자]


그러나 임진강 하류에서 훈련 중이던 전차부대에는 아무런 통보가 이뤄지지 않았다. 상급부대로부터 통보를 받지 못한 이 부대는 오전 5시15분쯤 한 초병이 강물이 급격히 불어나는 것을 목격한 뒤 병사들을 피신시키고 전차도 안전지역으로 이동시켰다. 물에 일부가 잠긴 전차 1대는 물이 빠진 뒤에야 대피할 수 있었다.

육안으로 수위 상승을 목격, 합참에까지 보고됐지만 군은 수자원공사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7일 간부회의에서 “자동경보 시스템이 고장 날 수도 있는 만큼 육안으로 (수위가 높아진 것을) 확인했으면 관련기관에 알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고 한다.

수자원공사가 수위를 자동 측정해 경보할 목적으로 2002년 10월 임진강에 설치한 자동경보 시스템에만 군이 의존한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자동화가 됐더라도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했지만 민관 합동 매뉴얼은 없었다. 유사시 현장을 장악해 관리해야 할 군으로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고 있어야 했지만 구멍이 드러난 셈이다. 군은 2020년까지 장비 현대화를 통한 전력증강을 목표로 국방개혁을 추진해왔다. 내년 국방예산 중 방위력 개선비로만 9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장비를 현대화하고도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는 불안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7일 “(북한이) 갑자기 방류를 시작한 것”이라며 “소리 없이 물이 늘어나 그 징후를 전혀 감지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나마 우리 초병이 발견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전비태세 검열실에 지시해 군 당국의 늑장 대처 문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합참은 또 사진정찰기인 ‘금강’이 촬영한 임진강 북한 지역의 댐 사진 등을 통해 북한이 주장한 대로 ▶갑자기 수위가 높아져 수문을 열게 된 것인지 ▶왜 댐의 수위가 급작스레 높아졌는지 등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

정용수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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