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바둑부국' 발빠른 행마…기전운영 선진기법 선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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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중국바둑이 자꾸 커지고있다. 우승상금 15만달러의 국제대회인 춘란배를 만들어 세계바둑계를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국내대회인 기성전을 진행하면서 자본주의적인 온갖 선진기법을 선보여 한국과 일본에 톡톡히 한 수 가르쳐주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세계바둑계의 상금 부문에선 무임승차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1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일슈퍼대항전은 양국이 번갈아 주최하지만 달러로 나가는 상금은 모두 일본이 댔다.

중국은 국내기전도 아주 작았다. 기전규모는 한국이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고 중국은 한국의 5분의 1 수준. 예를 들어 일본 기성전 우승상금이 3억5천만원이고 한국의 왕위전은 3천만원, 중국의 명인전은 6백만원 하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 기사들에겐 거액의 상금이 걸린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최고의 희망이자 일종의 특혜였다. 중국기원은 선수에게 상금의 30%만 주고 70%를 회수했으나 여기에 불만을 토로하는 기사는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국내기전은 폭발적인 바둑의 인기와 경제성장에 따라 나날이 커지더니 순식간에 한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지금 중국랭킹1위 창하오 (常昊) 8단과 랭킹2위 마샤오춘 (馬曉春) 9단이 결승7번기를 벌이고 있는 제1회 기성전의 우승상금은 30만위안 (약4천2백만원) .한국내 어느 기전보다 많은 액수다.

더구나 기성전은 황금과 백옥등 천연보석으로만 만든 우승컵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 컵의 가격만도 30만위안을 상회한다. 컵의 높이는 바둑의 361로를 상징한 361㎜. 대회를 치르는 방식도 아주 재미있어 한국기원의 정동식 사무국장은 "배울점이 많다" 고 솔직히 고백한다.

우선 기성전은 난지양 (南江) 기업이란 대기업과 중국기원이 15년 계약으로 시작했다. 춘란배가 3년 계약을 맺었듯 일단 15년을 열고 다시 합의하면 계약을 연장하는 식이다. 이래서 대회의 총주임은 중국기원의 주석이, 집행주임은 남강기업의 회장이 맡았다.

남강기업은 주택건설.음향기기.광고업 등 다양한 회사를 지닌 상하이 (上海) 의 대그룹이다. 이들은 대회의 스폰서로 항공사 (Air China) 와 투자회사.보석공예사.홍콩의 가구회사 등 많은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또 풍광 좋기로 유명한 저장성 (浙江省) 펑화 (奉化) 시의 후원을 받는 대신 이지역 최고의 관광지인 시커우 (溪口) 를 선전하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대회명은 최종적으로 '溪口杯中國棋聖戰' 이 됐다. 결승전 1, 2국은 바로 이곳 시커우에서 열렸고 이 대국을 산상의 절경에서 해설하여 중계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팸플릿도 아주 잘 만들어 그 안에 한국의 이창호9단과 일본의 조치훈9단의 사진.축하인사말도 실었다. 주최측에선 시상식 때 한국기원의 임원들이 참가해주기 바란다며 모든 경비를 부담하는 초청장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기성과 한국기성의 대결을 번갈아 주최하자고 제의했는데 이 제의에 거꾸로 한국측이 고민에 빠졌다. 한국 기성전의 총예산은 불과 7천5백만원. IMF로 본대회조차 대폭 줄이지 않을 수 없었던 주최측이 거액의 돈이 드는 교류전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형편.

바둑계에선 한국과 중국의 상황이 슬슬 역전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중국대륙이야말로 한.일 프로기사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줄 보고가 될지도 모른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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