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교수들 佛현대철학 해부한 '주체개념의 비판'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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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나는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 우리는 곧잘 이런 의문에 싸인다.

이는 바로 자아 또는 주체에 대한 논의의 출발선으로서 근대서양의 경우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식의 절대주체적 존재론에 휩쓸려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을 풍미한 해체.탈근대.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이 보편적 인식에 일대 혼란을 몰아왔다.

바로 '주체의 죽음' 을 선언하고 나선 프랑스의 네 지성 자크 데리다 (1930~ ).자크 라캉 (1901~81).미셸 푸코 (1926~84).루이 알튀세 (1918~90)가 그 장본인. 이들의 사유체계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주체개념의 비판' (서울대출판부.9천원) 이 선을 보였다.

이번 책은 특히 국내 철학계에선 거의 불모지로 치부되면서 번역서만 난무하는 프랑스 현대철학분야에 윤효녕 (단국대.영문학).윤평중 (한신대.철학).윤혜준 (외국어대.영문학).정문영 (계명대.영문학) 교수가 직접 집필에 나선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익히 알려진 대로 데리다.라캉.알튀세.푸코는 전통적 절대주체에 대한 비판과 해체작업을 선도한 인물들이다.

그 명분은 과거의 주체개념이 투명한 사유능력을 갖고 실재 (實在) 를 명석.판명하게 파악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선 데리다는 플라톤의 이데아, 데카르트의 코기토 (사유주체) , 루소의 로고스 (자연철학) , 헤겔의 관념론적 절대인식, 후설의 현상학적 의식주체 등 현존하는 모든 형이상학에 대한 부정.해체를 주도했다.

또 라캉의 경우 "나는 당신이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는 사회적 존재론을 강조하며 기존 철학질서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런가 하면 알튀세는 개인이 역사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느냐를 통해 존재성이 규정된다고 했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사회적으로 어떻게 불리느냐는 '호명 (呼名) 이론' 에 의해 존재를 확인할 뿐이라는 것. 개인을 사회구조의 버팀목 (철학용어로 담지자) 으로 간주한 그의 시각은 독특했다.

여기다가 푸코는 이성적.자율적 주체가 자기 운명의 주인임을 설파하는 주관철학의 허구성을 급진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그는 어떤 시대건 사유와 담론의 역학은 권력과 분리될 수 없는 형태로 얽혀있다는 특이한 논지를 집대성해 철학계에 돌풍을 불렀다.

이들 네 사람의 철학은 관념론에 젖어 있던 근대 인문.사회학에 해방적.진보적 역량을 부여하는데 공헌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이들의 '근대적 주체' 에 대한 부정은 인식의 허무주의를 초래할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책의 필자로 나선 국내 네명의 교수는 위르겐 하버마스, 마이클 라이언 등 대안을 찾는 철학자들의 견해를 빌어오고 있다.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 경험적 삶의 현장에서 주체에 대한 완전 긍정도 부정도 모두 위험하다.

따라서 개별성과 상호성을 겸비한 자세, 즉 저항할 때는 저항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을 때는 연대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는 것이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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