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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는 진영이와 나의 연결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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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고(故) 장진영(작은 사진)씨의 발인식이 4일 오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남편 김영균씨가 고인의 운구되는 시신을 뒤따르며 애통해하고 있다. 이영목 기자

그는 ‘윤회(輪廻)’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고(故) 장진영씨와의 사랑만큼은 윤회할 것으로 믿는다. 장씨와 김영균씨가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1월 23일. 지난 1일 장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8일간의 사랑이었다 . 어떤 언론은 “1년7개월 동안 두 사람은 100년의 사랑을 나눴다”고도 했다.

-장진영씨를 만났다가 9개월 만에 암인 줄 알게 됐다는데 당시 장씨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처음에는 나만 알고 있었다. 진영이는 암에 걸린 줄 모르고 있었다. 진영이가 충격받지 않게 조금씩 사실을 알게 해 줬다.”(김씨는 울음을 참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나.
“진영이의 병이 결코 나아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가 아니면 면사포를 씌워 줄 수 없었다. 결혼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 그런데 진영이가 스타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치료차 LA에 갔다가 진영이에게 ‘너랑 나랑 여기서 결혼식을 하자’고 했다. ‘오래전부터 너와 부부의 연을 맺는 게 나의 소원이었고 이제는 네가 답해 줄래’라고 말했다. 진영이는 ‘결혼은 병 다 나았을 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영이는 병이 호전되는 줄로 알고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소원이라고 하고 여기서 몰래 먼저 하고 나중에 한국에서 다시 하자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또 한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장진영씨의 결혼식 때 모습은 여전히 전성기 때의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치료를 받고 있던 상태라 5㎏ 정도 체중이 빠져 있었지만 장씨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장진영씨의 투병생활을 돌볼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왜 나한테, 진영이한테 이런 시련을 주시나’ 했다. 서로 나이 들어서 이제야 비로소 반려자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암 발표 나고 진영이랑 결혼은 ‘끝났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집에서도 진영이와의 결혼은 물 건너간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떡하겠나.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인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 보자,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살려 보자고 다짐했다.”

-투병 중엔 두 사람이 어떻게 지냈나.
“병 걸린 이후로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병간호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등산도 다니고 그랬다. 계속 스케줄을 잡았다. 진영이가 실의에 빠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해 주고 싶은 것은 다 해 주고 싶었다. 그 선상에서 결혼식도 해 주고 싶었다.”

-혼인신고를 했는데.
“나도 한국에서 정식 결혼을 하고 당당하게 혼인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허락하질 않았다. 병은 점점 깊어지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이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내 호적에 올려 가는 길 외롭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결혼을 했으니 신고는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다만 아프니까 안 한다는 것은 왠지 내가 기회를 보는 비겁자가 되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래서 진영이에게 내 의견을 말하니 내게 짐이 될까 봐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면서 ‘다 나으면 그때 하자’며 망설였다.”

-세속적으로 보면 혼인신고를 하는 게 본인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나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진영이를 저렇게 보내면 세상에 진영이와 나와의 연결고리가 없었다.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긴 올렸지만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안 하면 단순한 남자친구였던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럼, 진영이랑 남남이 되는 것 아닌가. 도저히 못 참겠더라.”

-장진영씨는 나중에는 동의했나.
“그때 이후 진영이는 상태가 더 나빠졌다. 잠깐이나마 의식이 돌아왔을 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며 저승에서 만나더라도 너랑 부부로 만나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지켜 줬는데 앞으로 가는 길에도 김영균의 아내로서 외롭지 않게 하고 싶다. 이건 내가 널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얘기했더니 진영이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울음)”

-혼인신고는 둘만 아는 얘기였나.
“그렇다. 그러나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도 고민이었다. 3~4일 동안 서류만 들고 다녔다. 양가 부모님들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진영이 부모님에게는 내가 딸의 호적을 가져오는 것 아닌가. 우리 부모님은 결혼한 것조차 몰랐고. 그때 진영이 부모님들은 진영이가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아셨다. 내 손을 붙들고 통곡하신 적도 있다. 그러나 일단 저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금요일이 되고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니까 생각이 굳어진 것이다. 만약 진영이가 내일이라도 세상을 떠나면 관공서가 주말에는 일을 안 하니까 영영 혼인신고 할 기회를 잡지 못할 것 같았다. ”

결국 장씨의 사망 나흘 전 혼인신고를 하고 두 사람은 법적으로 부부가 됐던 것이다.
그는 혼인신고 후 일부 네티즌의 악의적인 루머에 시달렸다. 장씨의 재산을 노리고 혼인신고를 했다는 얘기가 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장진영씨 재산과 관련한 모든 권리를 장씨 부모님에게 일임한다”고 발표해 루머를 잠재웠다.

-지금 충격이 클 텐데.
“나도 그렇지만 진영이 부모님의 충격이 굉장히 크시다. 사랑스러운 딸을 키워 저세상에 먼저 보냈으니 그 슬픔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정말 부모님도 어떻게든 살려 보려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애를 많이 쓰셨다. 정말 부모님께 딸을 살려 내지 못한 걸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한없이 송구스러울 뿐이다. 그동안 기도도 정말 많이 했다. 진영이가 하늘이 밉다고 한 적도 있다. 우린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을 뿐인데….”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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