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총리] 권한 나누고 역할 분담 대통령 의지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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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가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위해선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유평준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4일 “총리의 문제는 권한과 책임의 언밸런스(불균형)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책임만 많고 권한은 없는 게 문제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헌법을 바꾸지 않아도 대통령이 총리에게 일정한 권한을 위임하면 이런 불균형은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해찬 당시 총리에게 힘을 실어줬던 것 같은 선례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유 교수는 강조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재임 시 노 대통령과의 역할 분담을 이렇게 기억한다. “대통령제에 한계가 있으니 총리와 분담하는 새로운 정치제도 모델을 만들자고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해서 권한을 많이 넘겨받았다. 가급적 대통령의 관심 사안을 줄이려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 대통령을 봤는데, 대화를 많이 하며 대통령의 의도나 철학을 정책에 반영하려 했다. 대통령도 의견을 낼 뿐이지 제동을 걸진 않았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법학)도 “대통령은 고령화·교육 문제 같은 2~3개의 장기 어젠다에 전념하고, 일상적인 내치는 총리에게 위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총리 자신의 노력 또한 대통령의 의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견해도 많다. 총리실 출신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설사 대통령이 의지가 없어도 총리가 법에 정한 권한을 행사하려고 해야 총리 제도가 유명무실화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그런데 총리 스스로 안 하려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법에 보장된 총리의 권한은 결코 작지 않다. 대표적인 게 국무위원 제청권이다 .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DJP 연합’으로 정권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종필 전 총리 정도를 제외하면 이 권한을 문자 그대로 행사한 경우는 드물다.

“총리가 역할을 하려면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잘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윤여준 전 의원의 얘기도 같은 취지다.

현행 헌법상 총리에겐 뚜렷한 한계도 있다. 총리를 임명할 때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해임 시엔 대통령 결심만으로 가능하다. 김영삼 정부 때 안기부장의 보고를 요구하는 등 ‘법대로’의 권한을 주장하다 물러난 이회창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실세 총리로 불렸던 이해찬 전 총리조차 “유시민·이상수 장관을 함께 임명하는 것에 반대했더니 (노무현 대통령이) 제청권을 빼앗아 가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게 “제 목소리를 내는 총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머지않아 청와대와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나오는 것도 이런 현행 제도의 한계 탓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헌법 개정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작게는 국무총리에 관한 헌법 조항 중 ‘대통령의 명(命)을 받아’라는 부분을 없애자는 얘기가 있다. 학계에서는 아예 총리제를 폐지하고 정·부통령제로 가자는 주장과, 의회에서 선출돼 정부를 이끄는 내각제식 총리를 도입하자는 견해가 팽팽하다. 

강주안·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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