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은실이' 감초역 성동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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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따, 성님은 무슨 대그빡을 예배당 종치듯이 허천나게 쳐부요. " SBS 월화드라마 '은실이' 를 보다보면 놓칠수 없는 캐릭터가 있다. 극장에서 표도 받고 문을 지키는 '빨간 양말의 사나이' 양정팔. 머리를 빗어 올리며 애드립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그의 본명은 성동일 (32).

얼굴이 알려진 건 최근이지만 91년에 입사한 SBS 공채1기생이다. 오랫동안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다. 연기층이 얇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 '은실이' 에서 맡은 배역은 '극장남자1' 이었어요. " 대사도 '형님 오셨소' 한마디가 고작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자수성가' 가 시작된다.

인천이 고향인 그는 대본을 받자 전남 화순으로 직행했다.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늘어놓는 전라도 사투리를 수첩에 일일이 옮겨 적었다.

" '여기저기' 는 '요짝조짝' , '막내' 는 '막둥이' 로 대사를 바꾸어 버렸죠. " 지금도 대본이 나오면 전화를 걸어 한줄 한줄 검증을 받긴 마찬가지다.

나중엔 전북이 고향인 이금림 작가가 아예 대본을 사투리로 썼다는 것.

또 60년대 어설픈 멋쟁이가 되기 위한 노력도 눈물겹다. 서울시내를 뒤진지 며칠만에야 노점상에서 당시 유행이었다는 상표 없는 빨간 양말을 찾아냈다. 이젠 넥타이와 손수건, 심지어 내복까지 빨간색으로 통일했다. 아예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셈이다.

그가 연극생활 7년6개월 동안 받은 '월급' 은 모두 1백20만원. 부평 역전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홀어머니는 '연극에 미쳤다' 며 아예 자식 취급을 안하기도 했다.

"눈물을 흘린 적도 많지만 연극에서 배운 건 고생이 아니라 기다림이었어요. "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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