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연금과 총선과민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민연금의 전국민 확대시행이 혼선에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월 총리 주재로 열린 당정 국정협의회에서 예정대로 4월 실시를 약속해놓고 느닷없이 국민회의에서 총선 이후 실시론이 나오더니 하룻밤 사이 다시 4월 시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다.

선거에 줄 영향이 하루 사이에 사라졌는지, 아니면 앞으로 변수가 생기면 정책이 다시 뒤집히진 않을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시행을 둘러싼 혼선은 최근 불거져 나온 국정혼란중 백미 (白眉) 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계기관의 행정무능에 정치권의 당리당략, 정부의 국정수행의지 부족 등이 한데 어울려 갈등과 혼란을 부채질해왔다.

연기론이 나왔지만 이미 국민연금은 1차신고 마감이 13일로 끝나고 40%에 가까운 4백만명 정도가 신고를 마쳤다.

여기에 홍보를 강화한다고 1만2천명의 공공근로요원의 지원신청을 동사무소별로 받아 놓은 상태다.

한쪽에선 일을 진행하고 다른 쪽에선 뒷다리를 잡는 일이 벌어져온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국민연금 확대문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것은 중대한 실책이고 관계자들에게는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시행을 자신할 보완책이 갖추어져 있다면 시행할 일이다.

시행할 자신이 없으면 보완책이 마련될 때까지 연기해야 한다.

내년 총선이 시행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태도다.

특히 여당의 경우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 찬성보다 반대의견이 2배로 나왔고 이런 분위기에서 강행실시할 경우 가깝게는 재.보선과 멀게는 내년 총선에 최대의 악재 (惡材) 로 등장할 것을 우려했다 한다.

그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런 식의 총선 과민증으로야 제대로 시행될 정책이 어디 있겠는가.

이미 정치권은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의약분업마저 여야의 야합속에 슬그머니 연기처리하고 말았다.

국민연금 자체로만 놓고 보아도 보완이 필요하다면 서둘러 대책을 강구해 실시하면 될 것이지 그 시기가 총선후일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

하나의 정책이 신뢰를 잃으면 다른 정책들도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환란 1년을 넘기면서 위에서부터 허리띠를 슬슬 풀더니 이완현상이 사회 전반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노사갈등에다 터전을 잃은 어민문제 등 휘발성 요인은 곳곳에 널려 있는 데도 말이다.

엄중한 현실을 각오를 갖고 돌파해야지 미루거나 덮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