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날의 풋풋한 첫사랑 그린 영화 '내마음의 풍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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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쉬리' 가 강렬한 비트의 록 파티라면 '내 마음의 풍금' 은 포근한 포크의 3중주다.

'내 마음의 풍금' 은 제목속에 영화의 모든 이미지가 담겨 있다. 순수.사랑.열병.추억 등. 60년대, 혹은 70년대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정서의 층을 갖춘 관객들이라면 '그래 나도 저랬지' 하는 공감을 살만한 보편적인 소재의 접근이 참신하다.

영화는 17세 늦깎이 국민학생 윤홍연 (전도연) 이 세살 많은 총각선생님 강수하 (이병헌) 을 짝사랑하는 이야기. 홍연의 시점에서 수하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영화의 첫장면은 이제 50대의 홍연이 선생님이 좋아하던 미국 여가수 코니 프란시스의 LP판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제 유물로나 남아있을 완행열차는 어느새 홍연의 추억을 고향인 강원도 오지마을로 싣고 간다. 홀어머니와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는 홍연. 어느날 어머니에 대한 분풀이로 집을 나와 산길을 걷던 홍연은 산리국민학교에 부임하는 수하와 마주친다.

"아가씨, 산리국민학교가 어디죠. " 자기를 난생 처음 '아가씨' 로 불러준 사람. 이 총각 담임 선생님을 홍연은 영영 잊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이 두 인물에다 또 한명의 인물을 붙여 '애정의 삼각관계' 를 만들었다. 수하가 사랑하는 동료교사 양은희 (이미연) .홍연은 자신의 사랑을 빼앗아간 은희를 연적 (戀敵) 으로 여기며 미워한다. 수하에게 제출되는 일기장엔 홍연의 수줍은 사랑고백과 은희에 대한 질시가 깨알처럼 박힌다.

42살에 뒤늦게 데뷔한 이영재 감독은 자신의 60년대 사진첩 속에서 추억의 편린들을 조리있게 뽑아내 역었다. 60년대 유행하던 팝송이라든가, 지금도 결코 낯설지 않은 운동회, 난장판같은 교실 풍경, '떠드는 사람' 을 적어놓던 칠판, 허름한 목재 교사 (校舍) , 인정많은 선생님들.

이데올로기의 대립시대였던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이 그린 50년보다 '내 마음의 풍금' 이 담은 60년대 풍경은 훨씬 따뜻한 일면이 있다. 그래서 영화속에는 궁핍보다 인정과 사랑의 색감이 짙다.

이 작품에서 이병헌의 연기는 칭찬받을 만하다. '바람의 아들' (TV) '런어웨이' (영화) 등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근육질 이미지를 쏙 빼고 화면을 압도하는 매력을 풍긴다.

꼭 10살 밑으로 나이를 낮춘 단발머리 전도연은 영락없는 시골소녀역을 잘 소화했다. 단지 약간은 바보스럽다시피한 초반 캐릭터를 끝까지 지속하는 힘은 약한 편이다.

금속성 소리가 요란한 '쉬리' 에 비하면 '내 마음의 풍금' 은 작고 연약하며 느리고 잔잔하다.

'쉬리' 에 단련된 관객들이 얼마나 빨리, 풍금소리같은 이 영화에 적응할 지 여부가 흥행의 변수가 될 것같다. 27일 개봉.

[노트]

☞ "선생님, 당신도 저 달을 보고 계신가요. " (홍연의 일기장에서) .달을 보는 마음은 60년대와 90년대말의 차이만큼이나 아득하다.

작품성 ★★★☆

오락성 ★★★

※★5개는 만점,☆은 반점. 중앙일보 영화팀과 평론가 강한섭 평가.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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