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일본 <4> 야스쿠니 대체 시설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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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무라 요시노부(島村宜伸·中) 전 농림수산상이 자민당 국회의원들을 이끌고 지난달 15일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고 있다. 총선에서 승리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해 대체 추도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도쿄 AP=연합뉴스]

지난달 11일 도쿄의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의 외신 기자회견장. 하토야마 대표는 야스쿠니(靖国)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나는 참배할 생각이 없으며, 각료들에게도 자숙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튿날엔 야스쿠니 대체 추도시설 건설 계획까지 들고 나왔다. 하토야마는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이 합사돼 있어 천황도 참배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고 누구나 부담 없이 전몰자를 추도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토야마의 발언은 민주당 정권의 역사 인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가 재임 중 매년 한 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일부 각료들이 끊임없이 역사 망언을 일삼았던 자민당 정권과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우선 하토야마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 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 등 당 지도부가 한국에 우호적이다. 하토야마는 6월 5일 대표 취임 이후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사회를 미화하는 풍조가 일부 있긴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입장이 아니다. 우리들은 과거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오자와는 자유당 대표 시절인 99년 한국을 방문해 일본 각료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김구 등 독립지사들의 위패가 모셔진 효창공원 의열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 보수진영의 저항도 적은 편이다. 야마구치 지로(山口二郎) 일본 정치학회 이사장은 “민주당 내에도 보수우익의 목소리가 있지만 이들이 조직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다”며 “자민당 시절보다는 훨씬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한·일 관계가 성립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니페스토(공약)의 기초가 되는 정책집에는 “국회도서관에 항구평화조사국이라는 조직을 설치해 군대 위안부 문제 등 전후 문제를 처리해 나가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일 동맹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중시한다는 민주당의 외교노선도 한·일 관계에는 긍정적이다. 민주당은 외국인 지방참정권 허용에도 적극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 출범과 함께 과거사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우선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민주당은 일본에 영토주권이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모든 나라가 그렇듯 영토 문제에선 일본도 여야와 이념의 차원을 넘어 한목소리다. 야스쿠니 대체 추도시설 건설을 위한 조사비용도 지난달 31일 상정된 내년도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장 올가을 문부과학성의 고교 역사교과서 검증이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최근 각 지자체의 우익 교과서 채택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과거 일제 침략을 미화해온 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등이 주도해 만든 후소샤(扶桑社)와 지유샤(自由社)판 고교 역사교과서가 정부 검증을 통과할 경우 또 한차례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정권이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증까지 일일이 반대하고 나설 경우 자민당 등 보수파의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며 “납치 문제 등으로 대북 강경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보수진영을 자극할 만한 정책들은 뒤로 미루고 경기부양과 정치구조 개혁·외교안보 문제부터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나카 아키히코(田中明彦) 도쿄대 교수는 “야스쿠니 신사 대체시설 건설이나 외국인 지방참정권 문제 등 한국이 기대하는 정책들의 논의는 내년 참의원 선거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해 정권 운영이 안정될 때까지는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을 무리하게 꺼내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민주당 정권이 한국에 우호적인 만큼 우리는 시간을 갖고 기다려줘야 한다”며 “당장은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내년에 대비한 메시지를 서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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