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입학사정관제와 사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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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대입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시작으로 2010학년도 입시 시즌이 본격 막을 올렸다. 올해 입시부터는 80개가 넘는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실시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혼란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이에 편승해 사교육업체가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맞춰 컨설팅해 주겠다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른다.

이런 보도가 입학사정관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사교육을 오히려 부추긴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는 근본 취지는 사교육시장에서 만들어진 인재를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의 역할은 전문 사교육업체를 통해 만들어진 ‘잘 꾸며진 자기소개서’, ‘화려한 포트폴리오’, 면접을 위해 ‘잘 준비된 유창한 언변’이 전형에 유리한 요소로 끼어들지 못하게 철저히 관리하는 데 있다.

대학입시에서 그동안 가장 중시돼 온 내신과 수능성적은 사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것은 대학교육에 적합한 학생을 선별하는 데 부적절하고 한계가 있다. 입학성적과 대학에서의 학업성취도 간의 상관관계가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일선 고교에서 주요 교과목을 얼마나 열심히 가르치고 공부했으며, 각종 비교과 활동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가 대학에서의 학업성취도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지원자의 고교에서의 교과·비교과 활동과 업적을 여러 전문가가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입학사정관제가 공정하게 인재를 선발하는 최선의 방안임은 현재로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선진 입시제도가 잘 정착되어 사교육을 억제하고 공교육을 살려내며, 궁극적으로 대학교육의 선진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학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수험생의 눈길을 끌기 위해, 정부 정책에 따라 마지못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대학은 없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 대학들은 건학 이념이나 특성에 맞추어 어떤 인재상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우선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이를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다.

그리고 전형과정에 있어서 사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이른바 ‘스펙’을 갖춘 지원자들을 철저히 걸러내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입학사정관제의 성패는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 주도적 인재는 학원을 많이 보낸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면 오히려 수동적 인간이 되고, 자기 발전의 원동력인 창의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입학사정관제를 시행하는 이유는 자기 주도적 학습태도를 가지고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능동적인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것이고, 이러한 교육환경과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순조롭게 정착되면 망국병이라 할 수 있는 사교육 열병을 효과적으로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대학의 선발과정만큼 입시 이해관계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비싼 돈을 들여 컨설팅을 받기보다는 원하는 대학에 직접 물어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더 쉽게 구할 수 있다. 어떻게든 대학에 입학만 시키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사교육의 틀에 자녀를 몰아넣게 되면 결국에는 자녀의 미래를 망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일선 고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맞춤형 교육과 다양한 계발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쇄신해야 한다. 인재 양성의 책임을 사교육시장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학생을 관찰한 내용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학생부에 기록하고 이를 학생 지도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대학입시 개혁은 반드시 이뤄내야 하고, 입학사정관제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정책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백성기 POSTECH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