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돈 쓴 '농어촌 개선사업' 5년만에 덜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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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농어촌구조개선사업비는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였다.

김영삼 (金泳三) 정부가 추진한 '단군이래 최대사업' 에 투입된 자금은 '마구 써도 되는 돈' 이 돼 버렸다.

수천만원씩의 자금을 지원받은 농업인 후계자는 사업 추진 5년만인 지금 단란주점 사장.주유소 사장 등으로 변모해 있었다.

YS의 선거공약인 '쌀 한톨도 못들여 온다' 를 지킬 수 없게 되자 농민의 불만을 막기에 급급한 상태에서 마구잡이 선심을 쓴 것도 주요한 이유였다.

새 정부는 현재 2단계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짜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사업에 대한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사후관리.감시가 없으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임을 이번 감사는 여실히 보여준다.

◇ 부실운영 실태, 실태들

▶사례1= 경기도화성군양감면의 李모씨는 96년 10월 1천5백만원의 낙농지원금을 받았다.

1년후 그는 단란주점을 개업했다.

문민정부는 92년부터 97년까지 농업인 후계자 5만2천8백23명, 전업농 4만2천5백26가구를 선정해 2조9천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그 뒤 술집 등을 경영하거나 도시로 전출한 사례가 비일비재. 그런데도 자금회수조치조차 안됐다.

▶사례2= 전남영암군시종면 소재 양돈시범단지 영농조합법인의 경우 축산분뇨처리시설 공사비로 4억5천만원을 집행하고서도 배가 넘는 10억5천만원을 지급한 것처럼 허위 보고했다.

하지만 영암군은 증빙서류도 없는 이 보고를 그대로 인정. 조사대상지역중 이런 식으로 허위 영수증과 세금계산서 등을 그대로 묵인하는 바람에 사업비가 부당.허위 집행된 건수는 1백8건이었고 과다지급액만 82억6천만원이었다.

▶사례3= 2001년 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개방됨에 따라 농림부는 94년부터 4년간 3천4백12억원을 들여 한우 경쟁력 강화사업을 추진했다.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2001년 한우 마리당 생산비를 1백60만원으로 낮추는 목표도 세웠다.

그러나 사업이 끝난 97년말 현재 마리당 생산비는 3백6만원. 사업시작 전인 92년의 2백75만원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송아지 생산기반 확충은 외면한 채 생산비 절감여지가 낮은 규모화.현대화사업만 집중 지원한 결과라는 게 감사원 지적이다.

▶사례4= 농림부는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92년부터 97년까지 8백48개 업체에 2천6백67억원을 지원해 농산물 가공사업 육성을 추진했다.

그러나 제품 판매망 확보계획 없이 사업자를 선정해 추진한 이 사업의 결과는 참담했다.

조사대상 1백37개 업체중 29개 업체가 매출 부진으로 가동 중단됐고 42개 업체는 적자가 누적돼 도산이 우려된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사례5= 농촌지역의 자연경관을 이용해 소득을 높이기 위한 관광농원 개발사업의 경우 48개 조사대상중 45개소가 식당 또는 숙박시설을 운영했고 이들의 농산물 판매수입은 전체 수익의 30%에 불과했다.

농업지원금이 식당 건축.운영비로 쓰여진 셈이다.

◇ 왜 이런 일이 발생했나

농어촌구조개선사업비는 융자금과 보조금 둘로 나뉜다.

융자금은 3년거치 7년분할상환, 연리 5%의 장기 저리다.

그나마 보조금은 공짜로 지원됐다.

그런데도 정부의 정책수립과 집행은 졸속 일변도였다.

정밀한 계획과 분석도 없이 대통령 공약사항이란 이유만으로 사업비가 지역별로 할당되기도 했다.

융자금은 개인부담능력을 우선 기준으로 삼는 바람에 영세농가는 제외되고 공무원과 결탁한 지역유지들이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주무부처인 농림부는 사업지침만 내려 보내고 일선 감독은 해당 시.군에서 맡다 보니 중앙정부 차원의 감독관리가 소홀, 허위계산서나 증빙서류 없는 자금 집행은 그래서 발생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현장을 들여다 보니 42조원이나 되는 사업인데도 사후관리는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고 혀를 찼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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