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경호르몬, 정부는 뭣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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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95년 대형 유조선의 기름 유출사고가 있었던 전남 여수.여천 앞바다 어패류에서 유류 독성으로 인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놀라운 발표가 나왔다.

바로 직전에는 맥도널드, 피자헛, 켄터키프라이드치킨 (KFC) , 하겐다즈 등 유명 패스트푸드 업체의 제품에서 살충제와 소각부산물 등 환경호르몬 물질이 어린이에게 해가 될만큼 과다검출된 조사결과가 공개돼 환경호르몬에 대한 감시 및 대책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내분비계 교란물질' 로 불리는 환경호르몬은 사람의 정자 수를 줄이고 성장억제, 생식이상, 면역력 저하 등을 초래하는 독성물질로 학계에서는 의심하고 있다.

때문에 환경호르몬이 지속적으로 체내에 축적될 경우 종 (種) 의 절멸 (絶滅) 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와 있을 정도다.

환경운동연합 등 6개 환경단체에 따르면 여수 앞바다의 굴.전복 등 어패류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체내 오염도가 가중됐고, 독성도 사고해역 부근에서 더욱 넓고 깊은 곳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돼 유류오염이 얼마나 가공할 사태인지를 웅변해주고 있다.

패스트푸드 업체 제품에서의 환경호르몬 물질 검출은 비록 4년전 미국에서 시판되고 있던 햄버거 등을 샘플로 했다 쳐도, 바로 체인점 업체의 같은 제품들이 우리나라에서 팔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환경호르몬 검출과 관련된 두가지 사례를 보면서 정작 우리가 주목하는 대목은 '민간단체의 적극적인 문제제기' 와 '정부당국의 소극적인 대응자세' 다.

물론 환경호르몬이 심각한 공해물질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불과 얼마전 일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나 이해가 원시적인 수준이지만, 그렇다 쳐도 정부측 소극성은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어패류의 경우 해당지역의 굴.전복 등이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 오염은 어느 정도인지, 여수 앞바다 외에도 기름 유출사고가 있었던 다른 해안의 어패류는 오염되지 않았는지, 당장 취해야 할 조치는 없는지…. 우리는 이같은 일들이야말로 바로 당국이, 그것도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해내야 할 '발등의 불' 이라고 생각한다.

패스트푸드도 마찬가지다.

햄버거나 피자나 켄터키치킨을 그대로 먹어도 되는건지, 하루 허용량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당국은 기민하게 돌아가기보다는, 젖병.장난감.컵라면의 환경호르몬사태때와 마찬가지로 사태를 과소평가하려는 듯한 인상까지 주고 있다.

패스트푸드에서 검출된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의 경우 우리는 아직 권장기준도 없고, 이 물질을 분류할 기기 (機器) 도 없다는 한심한 실상이라고 한다.

당장 필요한 것은 인력.장비.제도의 보강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의욕과 의지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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