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지원하면 망하기 십상, 자활 의지 냉정히 평가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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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이종수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커진 건 반갑지만 직접 나서는 건 자칫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정동 기자

‘사회적 기업’이 유행이다. 지난주에만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500억원을 조성하겠다’(SK그룹), ‘사회적 기업 3개를 추가 설립한다’(포스코), ‘사회적 기업을 지원해 취약계층 일자리 1000개를 새로 만든다’(현대차)는 기업들의 약속이 잇따라 발표됐다. 정부도 이미 소액대출은행(마이크로크레디트) 300개, 사회적 기업 2000개를 육성하겠다는 지원 계획을 밝힌 상태다.

사회적 기업은 능력과 나이·장애 등으로 고용시장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고용해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복지 문제를 시장 원리로 풀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개념이 확실치 않고 경험도 많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다. 자활 유도라는 본래의 목적보다 생색 내기와 일회성 지원에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국내 사회적 기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사회연대은행의 이종수 상임이사도 이런 걱정을 한다. “돈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자활을 돕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이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2002년 설립된 사회연대은행은 올해로 8년째 소외계층 창업 지원을 위한 마이크로크레디트와 사회적 기업, 아동복지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비정부기구(NGO)다.

-사회적 기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일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시장 원리로 빈곤과 복지의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이다. 사회 보장 등 전통적인 복지정책은 생계대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원 대상이 경제활동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두고 배고픔을 면해줄 밥 한 끼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비해 사회적 기업을 통한 복지는 이런 사람들에게 스스로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자 한다. 서비스업이건 제조업이건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의 장점은 어떤 게 있나.
“지원 대상이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생존을 넘어 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다.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경제영역의 바깥에 있던 사람들을 안으로 많이 끌어들이면 전체 생산과 소비를 늘릴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을 통해 자활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정부의 재정 부담과 기업·사회의 부담도 줄어든다.”

-사회연대은행을 만든 계기는.
“1970년대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과 호주계 은행에서 일했다. 서울·자카르타·홍콩 등에서 근무하다 96년 현지법인 설립을 위해 캄보디아로 갔는데 사회공헌 차원에서 캄보디아 정부와 공동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를 만들게 됐다. 돗자리를 짜서 내다팔 수 있도록 원료와 기초 생산도구 구입비를 대출해주는 것이었다. 내전이 터지면서 무산되고 말았지만 한국에서도 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사는 97년 은행에 사표를 낸 뒤 인도네시아 노동부 컨설턴트로 일했다. 해외 차관을 들여와 농촌 빈민에게 직업교육을 시키는 일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일을 통해 복지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99년 귀국한 뒤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니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았다. 2002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삼성그룹으로부터 10억원을 지원받아 사회연대은행을 열 수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을 해왔나.
“자활 의지가 있는 금융 소외계층의 창업을 위한 소액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주로 해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업소를 ‘무지개 가게라고 하는데 600개가 넘는다. 문을 닫은 곳이 10%가 안 될 만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회적 기업과 함께 이를 준비 중인 자활공동체에 대출과 금융컨설팅을 제공하는 지원활동, 공부방 같은 아동 복지 지원 등 크게 세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952곳에
총 207억원을 지원했다.”

-무지개 가게가 잘 운영되는 비결이 있을 것 같다.
“창업자금만 지원하면 망하기 십상이다. 경영 능력을 키워줘 자립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신청 단계부터 자활 의지와 창업 능력, 직무 능력을 엄밀히 평가한다. 가게를 열 지역을 직접 가보고 업종에 맞는 컨설팅을 한다. 중요한 건 사후관리다. 장사가 안 되면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기술지도와 판로 확보, 홍보, 마케팅도 전문가의 자원봉사를 통해 지원한다.”

사회연대은행의 재원은 정부 재정과 민간 기부가 대략 절반씩 차지해왔다. 정부 쪽에선 보건복지가족부와 노동부·한국은행·강남구청 등이, 민간에선 LG전자·KT와 은행·생명보험사 등이 후원자다. 그런데 올 들어 민간 후원이 크게 줄었다.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하자 기업들이 사회적 기업 지원에 직접 나선 탓이다.”

-정부나 기업의 관심이 높아진 게 좋은 일 아닌가.
“물론이다. 하지만 역할 분담과 효율성에서 문제가 생긴다. 사회적 기업은 시장을 베이스로 한다. 이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도 정부가 대출 재원을 투입해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민간이 잘할 수 있도록 제도적·정책적 지원을 할 뿐이다. 정부가 직접 하면 관료주의로 흐르기 쉽고 우선 지원받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도 나타날 수 있다. 정부의 직접 지원은 소액 급전 대출 등 생계유지자금 지원에 한정해야 한다. 이미 전문화된 NGO들을 놔두고 기업들이 직접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칫 사회적 낭비가 될 수 있다.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막대한 돈을 기부한 워런 버핏을 보라. 직접 하는 것보다 이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빌 게이츠 부부에게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은행과 새마을금고 등 금융회사도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하겠다고 한다.
“자기 모순이 될 수 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신용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국내 금융회사들은 담보대출 위주다. 이 때문에 성인 4명 중 1명꼴인 813만 명이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돼 있다. 이런 현실을 고치는 게 금융회사들이 할 일이고 선진화하는 길이다. 주주를 위해 이익을 극대화해야 할 회사들이 이윤 창출이 최우선 목표가 아닌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직접 하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다.”

이 이사에겐 두 가지 명함이 있다.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라고 쓰인 것과 세계 최대 보험중개회사의 한국법인인 에이온(AON)코리아의 사장이라고 쓰인 것이다. 에이온은 내년부터 AIG를 대신해 박지성 선수가 소속한 영국 축구구단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후원할 회사다. 그가 ‘시장에 바탕을 둔 복지’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짐작이 된다. 서울 충무로에 있는 사회연대은행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40여 명 직원 중엔 IBM이나 은행 등에서 근무하던 전문가가 적지 않다. 고액 연봉과 안정성을 버리고 봉사의 삶을 택한 이들이다. 한국이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사회라는 방증이다.

-사회연대은행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처음 시작할 때 한국에서 가능하겠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자영업 비율이 높은 데다 신용에 바탕을 둔 금융이 일반화돼 있지 않아 정착하기 힘들 것이란 얘기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명박 정부의 서민정책 최우선 순위에 오를 정도가 됐다.”

-아쉬운 점도 있었을 것 같다.
“복지부의 위탁사업으로 성매매 여성 지원사업을 했던 게 기억난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쉽게 벌어 많이 쓰는 데 익숙한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뜨개질 배워 열심히 살라는 식으로 접근했던 게 원인이었다. 사회적 기업이나 자활 창업을 지원하려면 단순히 돈을 주는 게 다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계기였다. 지원 대상의 행동양식과 사회적 관계를 제대로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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