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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정책혼선…무엇이 문제인가] 국민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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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출범 2년째를 맞는 '국민의 정부' 가 국정난맥으로 뒤뚱거리고 있다. 각종 주요 정책을 놓고 정부 부처간 사전조율이 되지 않고 당정간에도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일이 잦다.

여당 내부에는 신.구주류의 권력게임이 시작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고 공동여당간 정책공조도 마찰음을 낸다. 야당은 건전한 견제자 기능을 상실한 채 그때그때 대안없는 비판만 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연쇄발생하는 국정혼선의 원인을 짚어보고 대안을 찾아본다.

최근 국정 난맥 책임의 상당 부분은 국민회의의 지도력 부재와도 무관치 않다. 여론과 민심을 수렴하고 동향을 파악, 적시에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정당의 기본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권정당으로서의 기능은 고사하고 내부 일처리 조차 한심하기 이를데 없는 경우도 왕왕 있다.

최근 서울 구로을 재선거 후보가 이강래 (李康來) 전청와대정무수석에서 한광옥 (韓光玉) 부총재로 교체된 과정은 국민회의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달 5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李전수석을 사실상 후보로 결정, 당에 통보했다. 이후 당 실무진은 자체적으로 수차례의 여론조사를 실시, 당선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이런 중요한 상황변화를 무시한 채 22일 사무총장 주재로 조직강화특위를 열어 李전수석을 구로을 조직책으로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조직책을 발표까지 한 뒤에도 '곤란하다' 는 의견이 잇따르자 당 지도부는 24일 金대통령에게 후보교체 불가피성을 보고했고 25일 후보가 교체됐다.

당의 지도력 부재는 대야관계에서도 두드러졌다. 협상 창구인 한화갑 (韓和甲) 원내총무는 이런 체제론 감당하기 어렵다고 고백할 정도다.

조기경보능력도 수준미달. 영남권 민심이 흉흉, 뒤늦게 지도부가 영남권에 몰려가 민심수습에 나서야 했는데 그 전까지 지역감정이 이토록 심화되는 것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된 큰 원인의 하나는 집권 1년이 넘도록 오랜 야당체질을 못 벗어난 데도 있다.

당의 골격도 대선 당시의 체제 그대로다. 총재단 16명, 지도위원은 40명, 당무위원은 1백57명에 이른다. 지지층을 넓히기 위해 마구잡이로 머리수를 늘려놓은 구성 그대로다. 그러다 보니 각종 회의체가 효율적으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당무회의는 회의가 아니라 집회" 라는 한 의원의 힐난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총재권한 '대행' 체제의 한계도 지적된다. 당 관계자들은 "당내에 잘 보여야 할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개혁의 첨병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 아니냐" 고 토로하고 있다. 심지어 참석률 저조로 성원 (成員) 이 안돼 회의가 지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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