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전후 한달간 불밝힌 홍콩예술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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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홍콩은 아시아 문화 중심지가 아니다. 영화를 뺀다면 중국 본토는 물론 한국과 일본 등에 비해 내세울 만한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도 없고 이렇다할 창작물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홍콩은 아시아 문화 '향유' 의 중심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언제 가더라도 세계 일류 아티스트의 공연이나 대형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홍콩이기 때문이다.

이런 홍콩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행사가 매년 설날을 전후해 한달동안 열리는 홍콩예술제다.

올해도 세계 최정상의 함부르크 발레와 키로프 오페라 등 쟁쟁한 공연으로 홍콩 국내외에서 많은 관객들을 모으며 지난 13일 막을 내렸다.

행사 마지막을 장식한 함부르크 발레는 전통 발레 테크닉과 현대적인 감각을 잘 조화시킨 '번스타인 댄스' 와 대표작 '한여름밤의 꿈' 으로 홍콩문화센터 대극장 5회 공연을 매진시키며 홍콩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이 작품 못지 않게 관심을 모았던 것은 11~13일 APA드라마극장에서 열린 소극장 단막 오페라 '삼왕묘 (三王墓)' 와 '야연 (夜宴)' 이다.

중국 전래 설화를 중국 음악어법과 서양 오페라 기법의 조화로 풀어낸 이 두 작품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오페라 연출가 로킹만 (盧景文) 의 연출작으로 홍콩예술제가 처음으로 자체 제작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개런티를 주고 수준높은 공연을 유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생적인 문화창작에까지 나서겠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홍콩관광협회 공보관 스티븐 웡은 "60~70년대만 해도 홍콩은 문화사막이라고 불릴 만큼 문화활동의 불모지였다" 며 "홍콩예술제가 73년 시작하면서 문화는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면서 문화활동이 급부상했다" 고 설명한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뉴욕이나 런던에 가면 브로드웨이와 이스트엔드를 찾는 것처럼 홍콩에 오면 공연 한편 정도는 보는 문화도시로 홍콩의 대외 이미지를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홍콩의 적극적인 문화마케팅 덕분에 홍콩은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위기로 유명 외국단체 초청공연을 망설이고 있는 와중에도 잇따라 대형공연을 유치하고 있다.

이번 예술제 외국 관람객 수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 95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공연 당시 대만과 필리핀에서 5만여명이 이 공연 관람을 위해 다녀간 점을 생각하면 홍콩의 문화마케팅이 얼마나 내실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홍콩은 고정환율을 유지하기 때문에 주변 아시아국들에 비해 쇼핑 이점은 떨어졌지만 관광객이 큰 폭으로 감소하지 않고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바로 이런 문화마케팅 덕분이다.

홍콩 =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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