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폭탄발언] 상도동 '터무니없는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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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의 폭탄발언을 김영삼 (金泳三.YS) 전 대통령측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YS측은 여당이 한보청문회와 검찰수사로 한번 걸러진 사안을 다시 경제청문회의 주요 의제로 선정한 것부터가 뭔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져왔다.

여기에다 최근 국민회의 수뇌부가 '과거정권 비리설' 운운하며 압박을 가해오자 바짝 여권 움직임을 주시해왔다.

YS측이 이날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鄭전총회장 - 여권의 물밑거래 의혹' 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선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민주계인 한나라당 박종웅 (朴鍾雄) 의원은 청문회가 진행 중인 오전 10시30분에서 11시까지 상도동에서 YS와 독대한 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여권이 오랜 수감생활로 심신이 비정상 상태의 사람과 음험한 물밑거래를 한 것 같다" 며 "감옥에 있는 사람을 이용, 정치탄압을 하려는 비열한 작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고 맹공을 퍼부었다.

YS비서실 관계자도 "鄭전총회장이 최근 수일 동안 교도소에서 나와 안양병원에 있으면서 여권과 입맞추기를 했다는 말이 있다" 며 의혹을 제기했다.

金전대통령은 이날 김광일 (金光一)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오찬을 같이하면서 "웃기는 소리다.

처음부터 날 망신시키려고 (여권이) 작정한 것" 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또 "감옥에 갇힌 사람과 무슨 흥정을 했겠지. 그 사람 (鄭전총회장) 은 사면이 급했을 것 아니냐" 고 말했다고 한다.

金전실장은 "金전대통령은 鄭전총회장의 증언을 일소에 부쳤다" 면서 " '몇년 전엔 8백억원이라고 했다가 몇년 지나자 1백50억원으로 줄었으니 몇년 후엔 돈 받았다는 소리가 쑥 들어가겠네' 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고 전했다.

또 " '수표로 줬다면 특위에서 수표번호 등을 추적해 보면 알 것 아니냐. 자꾸 자충수를 두니 안타깝다' 고 하시더라" 고 덧붙였다.

金전실장은 "정책청문회가 아니라 정치보복적.특정인 망신주기식 청문회임이 드러났다" 며 "청문회 직접출석은 물론 비디오.서면 증언이나 대국민 사과성명 등 어느 것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 고 강조했다.

날치기로 이뤄진 청문회는 불법이란 주장도 덧붙였다.

동행명령장이 발부되더라도 불응할 방침이다.

한마디로 단독청문회가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실패작으로 기울자 YS를 압박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게 상도동측 시각이다.

따라서 鄭전총회장의 증언으로 되레 YS부자의 청문회 불출석에 대한 명분이 확고해졌다고 보고 있다.

YS의 한 측근은 "결국 부메랑이 돼 자신들 (여권)에게 부담이 돌아갈 것" "대선자금에 관한 한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 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선자금 전면조사' 로 확전되면 한판 벌일 수도 있다는 암시다.

물론 속으로는 자신들에 대한 따가운 눈길을 곤혹스러워 한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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