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적당히 마시면 '失보다 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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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커피만큼 시공을 초월해 인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기호식품도 드물다. 바흐.베토벤.칸트.발자크.헤밍웨이 등 많은 위인들도 커피애호가였다. 커피는 이들의 예술적 영감과 학문적 성찰에 기여해 '영혼을 맑게하는 향기' 란 찬사를 얻었다. 그렇다면 커피는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근 밝혀진 사실들을 살펴본다.

커피가 건강에 해롭다고 알려진 주 원인은 숙면방해 때문. 서울대병원 정신과 정도언 (鄭道彦) 교수는 "커피를 마셔도 잠을 잘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실제 수면뇌파검사를 해보면 대부분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고 강조했다.

커피의 주성분인 카페인이 중추신경을 자극해서다. 카페인의 혈액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는 대개 4시간. 따라서 저녁식사 후 취침 때까지 커피는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피로 환자에게도 커피는 좋지 않다.

강북삼성병원 만성피로클리닉 신호철 (申浩澈) 교수는 "휴식과 영양 등 피로의 근본치료를 소홀히 한 채 카페인의 반짝 효과에 매달리면 피로가 더욱 가중되는 악순환을 밟게 된다" 고 설명했다.

건강한 사람이 작업능률을 올리고 기분전환을 위해 카페인의 중추신경 자극효과를 활용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피로가 쌓인 이들에겐 독이 된다는 것. 속쓰림 등 위궤양이 있는 사람도 커피는 좋지 않다.

고려대안암병원 내과 송치욱 (宋致旭) 교수는 "커피는 위벽을 자극해 위산분비를 촉진하고 위장과 식도를 연결하는 괄약근을 느슨하게 해 위산이 식도로 역류해 속쓰림을 악화시킬 수 있다" 고 경고했다.

이 밖에도 커피는 콩팥에 작용해 소변량을 늘리고 목소리를 잠기게 하는 부작용이 있어 중요한 일을 하기 전 커피를 마시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심장이 예민한 사람에겐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을 초래하며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일 수도 있다. 이처럼 커피에 대해 의사들이 내리는 평가는 인색한 편.

그러나 커피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많다. 최근 대규모로 커피의 건강효과연구에 착수한 미국 반더빌트대 약물중독센터 피터 마틴소장은 "커피가 우울증과 자살률을 떨어뜨리며 알콜중독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고 설명했다.

불필요한 오해도 많다. 임신부가 커피를 마시면 미숙아가 나온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이는 쥐에게서 얻은 동물실험 결과로 임신부라면 하루 70잔 이상의 커피를 매일 마셔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커피가 암을 일으킨다는 것도 사실무근. 70년대초 커피가 방광암.췌장암에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지만 이들은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이 대개 흡연과 음주를 즐기기 때문에 나타난 분석상 오류로 판명됐다.

오히려 미국 하버드의대의 연구결과 하루에 커피를 4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24%가량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아이치현 암센터가 최근 2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위암의 경우도 커피를 매일 3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위암에 걸릴 확률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것. 커피가 뼈에서 칼슘을 빼내므로 골다공증을 일으킨다는 것도 과장된 것.

미국의학협회는 94년 매일 우유 한 컵 정도의 칼슘만 섭취해주면 커피 서너 잔을 마신다고 골다공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란 유권해석을 내렸다.

커피소비량이 많은 국가일수록 평균수명이 대체로 높은 것도 커피가 건강에 도움을 주는 간접적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커피는 건강에 좋을까 나쁠까. 연세대의대 약리학교실 김경환 (金景煥) 교수는 "커피는 말 그대로 기호식품일 뿐 건강과 관련해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고 강조했다. 다만 적정량을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예컨대 커피를 적당히 마시면 두통을 가라앉혀 주지만 지나치게 마시면 오히려 원래 없었던 두통이 생긴다.

문제는 사람마다 유전적으로 카페인 분해효소의 능력에 차이가 크다는 것. 따라서 커피의 효능과 부작용을 스스로 저울질해 하루 얼마나 커피를 마셔야 좋을지 경험적으로 알아낼 수밖에 없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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