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용 주택만 늘려선 집값 안정 한계 … 중대형 선호하는 중산층 수요도 고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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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보금자리주택에 이어 수도권 그린벨트의 민간 중대형 아파트도 건설을 대폭 앞당기기로 한 것은 서민용 중소형 주택만으론 집값 안정에 한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보금자리주택은 분양·임대용이 함께 지어지는데, 전용면적이 85㎡ 이하인 중소형이다. 이 크기로는 입지 조건이 특히 좋은 서울 강남권의 일부 지구를 제외하면 중산층 이상의 수요를 끌어들이기 쉽지 않다. 정부가 수도권 그린벨트에 짓기로 한 민간 중대형 아파트도 함께 조기 공급하기로 한 이유다.

◆중대형 수요 충족=정부는 지난해 보금자리주택 150만 가구 건설 계획을 밝히면서 민간 중대형 50만 가구를 함께 짓기로 했다. 이중 수도권 그린벨트에서 보금자리주택 30만 가구와 민간 중대형 10만 가구를 공급하기로 했었다.

이번 ‘8·27 서민 주택정책’에 따라 수도권 그린벨트의 보금자리주택은 2018년까지였던 공급 일정이 2012년까지로 6년 앞당겨지고, 물량도 2만 가구 늘었다. 이처럼 중소형 아파트 물량은 쏟아지는데 중대형이 거북이걸음을 한다면 수급에 불균형이 생겨 중대형 집값이 불안해질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보금자리주택은 아무리 늘려도 중형 이상의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채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돈 문제도 걸려 있다. 수도권 그린벨트에 보금자리주택 지구를 조성하려면 보상금을 주고 땅을 사들여야 한다. 보금자리주택만 서둘러 짓고, 민간 중대형은 천천히 건설한다면 이미 지정한 지구의 일부를 빈 땅으로 남겨둬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토지 보상을 위해 나간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사들인 택지를 민간 건설사에 빨리 넘겨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금 회수가 늦어지면 서민용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금자리주택 시범단지로 지정된 서울 강남구 세곡동 주민들이 27일 건축 행위 제한 안내문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청약예금도 혜택=현재 청약통장은 네 종류가 있다. 청약저축은 보금자리주택 등 중소형 공공주택용이고, 청약부금은 중소형 민영주택용이다. 청약예금은 예치금 액수에 따라 모든 민영주택의 청약이 가능하다. 공공·민영 아파트에 모두 청약할 수 있는 주택청약종합저축도 있지만 나온 지 얼마 안 돼 아직 1순위자가 없다.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어 짓는 32만 가구를 비롯해 2012년까지 수도권에 총 60만 가구(분양 26만, 임대 34만 가구)의 보금자리주택을 짓기로 함에 따라 청약저축 가입자(지난달 말 기준 219만 명)의 당첨 기회는 확 늘었다. 이에 비해 청약예금 가입자(227만 명)는 소외감이 커졌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민간 중대형 아파트도 조기 공급을 추진키로 함에 따라 이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됐다.

◆땅값 문제 없을까=경기 하남시 땅값은 6, 7월 두 달 연속 전국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6월엔 한 달 전에 비해 0.7% 올랐고, 7월엔 0.9%로 상승률이 더 높아졌다. 정부가 5월 하남 미사지구를 대규모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로 지정키로 하면서 개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당초 2018년까지 10년에 걸쳐 풀기로 한 수도권 그린벨트 78.8㎢를 4년 만에 모두 풀 경우 주변 지역 땅값이 들썩일 거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그린벨트가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실수요자가 아니면 거래가 쉽지 않은데다, 앞으로 수시로 실태조사를 벌일 계획이니 좀 더 지켜봐 달라는 입장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땅값이 급등한 지역은 아예 후보지에서 배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보지 발표 뒤에 너무 오른 경우엔 보상가 산정 시점을 지구지정일에서 주민공람 시점으로 앞당겨 보상을 노린 투기를 막겠다”고 덧붙였다.

재원 마련도 숙제다. 정부는 인·허가를 내준 뒤 실제 공사에 들어가는 돈을 감안하면 내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연평균 2조원씩의 추가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중 연 5000억~1조원을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통합해 출범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의 사업자가 조달해야 한다. 가뜩이나 많은 부채를 안고 출범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실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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