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눈] 수비수는 절대 흥분 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도 올림픽 축구대표팀 주축은 대학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한국 축구의 토양이 많이 바뀌었다. 이번 올림픽팀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프로로 직행한 선수들이 주축이다. 프로무대에서 3~4년 정도 활약하다 보니 질적으로 많이 향상됐고, 그리스전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 김호 전 수원삼성 감독

분수령은 역시 김치곤이 퇴장당한 장면이다. 수비수가 명심할 덕목은 침착과 안전이다. 수비수는 어떤 경우에도 흥분하지 말아야 하며, 공을 잡았을 때는 안전한 처리를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런데 김치곤은 안이하게 드리블하다 공을 뺏겼고, 이를 반칙으로 되찾으려다 경고를 받았다. 두번째 경고 장면도 안전과 침착을 잊은 결과였다.

김치곤의 퇴장으로 남은 선수들은 한걸음씩 더 뛸 수밖에 없었다. 무더운 곳에서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컸다. 멕시코전을 앞두고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특히 유상철 같은 노장선수는 체력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결국 멕시코전은 선수들의 체력을 얼마나 빨리 정상으로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이다.

퇴장 이후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은 좋았다. 주심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냉정함을 되찾았다. 벤치는 곧바로 공격수 한 명을 줄여 수비수 숫자를 회복했다.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3-4-2 대형보다는 4-3-2를 선택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수비숫자를 더 늘려야 우리가 수세 때 공을 차지할 가능성이 커진다.

가장 눈에 띈 선수는 이천수다. 수세 때 또는 한국의 반격 때 이천수의 움직임을 보면 타이밍을 절묘하게 조절했다. 영리한 지연 플레이가 자주 눈에 띄었는데, 유럽에 가서 많이 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재진도 공중볼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많이 움직였지만 너무 정직했다. 다른 선수보다 한발 더 움직인 조병국도 칭찬할 만했다.

김치곤의 퇴장에 대해 쓴소리를 들어야 할 쪽은 오히려 국내 프로심판들이다. 국내 심판들은 너무나 관대하다. 국제무대에서는 지적하고도 남을 반칙도 좀처럼 지적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반칙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

김호 전 수원삼성 감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