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예산 삭감안, 이상희 왜 몰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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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상희 국방부 장관 서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장수만 국방부 차관이 ‘국방예산 조정안’을 청와대에 단독으로 보고한 배경과 ‘하극상’ 여부다.

27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 얘기를 종합해 보면 전말은 이렇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말 각 부처에서 올라온 내년도 예산안을 취합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 자리에서 국방예산안(7.9% 증액)이 지난 4월 말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2010년 예산안 편성지침’을 어기고 과도하게 증액된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 대통령은 국방예산안 삭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장병 복지 등 병영생활관 개선 부문은 삭감 대상에서 제외하고 ▶무기 획득 소요를 객관적으로 산출해 과도하게 늘어난 방위력 개선비 부문을 재검토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특히 “무기 획득 과정에서 오가는 리베이트만 줄여도 방위력 개선비를 20% 정도 줄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의 지침을 받은 윤 장관과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은 국방예산 삭감안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윤 경제수석이 장 차관에게 “국방예산 조정안을 만들어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장 차관은 지난해에 비해 3.8% 정도 증액하는 수준의 국방예산 조정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장 차관은 청와대 보고 과정에서 국방예산 조정안에 대한 이상희 장관과 군의 반발이 예상되자 장관에게 사전 보고를 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이 장관은 25일 ‘국방예산 삭감을 재고해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윤증현 장관과 청와대에 보냈다. 서한에 장 차관의 청와대 직보를 ‘하극상’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장관 입장에서는 하극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도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을 거친 것이기 때문에 장 차관도 어쩔 수 없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서한 파문이 확산되자 한나라당 내에서는 국방부 장·차관을 각각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성회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예산 증액이 필요했다면 대통령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거나 국무회의를 통해 의견을 개진해야 했다”며 “대통령과 정부에 큰 부담을 주는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국회 국방위 간사인 유승민 의원은 “위계질서가 있는데 차관이 장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청와대에 예산 삭감안을 들고 간 것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정부 “3.5% 증액 협의 중”=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7일 "국방부가 기획재정부 등과 내년도 국방예산안을 애초 7.9% 증액에서 3.5% 증액으로 조정,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박성우·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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