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미사일 이라크 주거지 오발 폭격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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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길 잃은 미사일 두발이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이라크는 25일 인구밀집지역인 바스라주에 대한 미국의 공습으로 최소한 11명이 숨지는 등 7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은 "미사일 2기가 의도하지 않은 목표물을 가격한 것으로 보인다" 며 즉각 실수를 인정하고 "미국의 적이 아닌 이라크 시민들의 인명피해에 유감" 을 표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지난해말 사막의 여우 작전 이후 공세적으로 좁혀가던 후세인 포위망에 행여 구멍이라도 생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라크는 물 만난 고기처럼 초강경 비난을 퍼붓고 있다.

바스라주의 아메드 이브라힘 하마시 주지사는 "인구밀집지역에 대한 미국의 야만적인 공습으로 여성과 어린이들이 희생됐다" 며 "이들 지역은 군사시설은커녕 경찰서조차 없는 곳" 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라크 공격에 적극 협력했던 우방들도 이번 사고에 대해서는 발빼기에 급급해 미국이 혼자 바가지를 뒤집어써야 하는 상황이다.

공습에 동참했던 영국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발표, "영국 전투기들은 이번 폭격과 전혀 무관하다" 고 발을 뺐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기지 제공 등 이번 공격을 측면지원했다는 이라크의 비난을 즉각 부인했다.

사고를 일으킨 미군 전투기는 사우디에서 발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공습이 "이라크의 선제도발에 대한 응수였다" 며 비난의 화살을 이라크쪽으로 돌리려하고 있지만 민간인 살상에 대한 책임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미국은 이번 사고가 교황의 방문을 하루 앞두고 터져나온 것이어서 더욱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빌 클린턴 대통령의 면담이 성추문 등으로 '선과 악의 만남' 으로 비춰지고 있는 판에 클린턴 대통령이 민간인 살상이라는 '악의 외투' 를 한겹 더 껴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이날 멕시코에서 비난성명을 발표하고 " '군사적 조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 악화시킬뿐' 이라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신념을 재확인시킨 사건" 이라고 강조했다.

◇못믿을 첨단무기

미국의 미사일 오발 사고를 계기로 첨단 무기에 대한 지나친 신뢰가 재고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번에 사용된 미사일의 종류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공대지 고속 레이더 요격 미사일 (HARM) 로 추정하고 있다.

조종사의 최소한의 정보 입력만으로 적의 방공 레이더 시설을 스스로 찾아 파괴하는 HARM은 기당 3억5천만원에 달하는 초고가 첨단 미사일로 사막의 여우 작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하지만 25일 공습에서 발사된 5발중 2발이 목표를 잃고 민간인 거주지역을 덮쳤다.

또 5일 미.이라크 공중전 당시 미 전투기들은 4억6천만원짜리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AMRAAM) 3발과 5억7천만원짜리 장거리 피닉스 미사일 2발을 발사했지만 1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당시 레이저로 유도되는 이 첨단 미사일의 성능 시비가 일자 미군 당국은 "1백% 명중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 이라고 변명하기도 했다.

사막의 여우 작전 당시 미국이 이라크에 발사한 3백25기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역시 명중률은 80%에 그쳤다.

미 과학자연맹 존 파이크 우주정책부장은 "미국이 정밀유도병기 (PGM) 의 성능을 과신해 무력사용 결단을 지나치게 쉽게 내리는 경향이 있다" 고 경고했다.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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