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밀로셰비치의 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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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10월 평화협정 체결 이후 잠잠하던 코소보사태가 최근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으로 다시 한번 위기를 맞았다.

국제사회는 이번 사건의 책임자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신유고연방대통령을 지목한다.

그러나 밀로셰비치는 이번 사건이 국내문제라고 우기면서 외세 개입을 거부하고 있다.

밀로셰비치는 지난 91년 이후 계속돼 온 옛 유고슬라비아 민족분쟁의 장본인이다.

지금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화신 (化身) 처럼 행세하지만 밀로셰비치는 본래 철저한 공산주의자다.

17세때 공산당에 입당, 베오그라드대학시절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87년 세르비아공산당수, 89년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후 동유럽 민주화 과정에서 재빨리 민족주의자로 탈바꿈했다.

대 (大) 세르비아를 표방하는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민족성지 (聖地) 이면서 알바니아계가 주민의 90%인 코소보를 '세르비아인의 땅' 으로 만드는 것을 첫째 목표로 삼고 있다.

밀로셰비치의 이같은 과격함에는 불우했던 성장 과정과 개인적 배경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5세때 집을 나간 아버지는 1962년 자살했으며, 어머니 역시 72년 자살로 세상을 마감했다.

또 평생동지인 부인 미라 마르코비치는 철저한 공산주의자 집안 출신으로 아버지와 숙부는 유고의 국부 (國父) 였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와 함께 빨치산활동을 벌였다.

어머니도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나치에 의해 처형됐다.

밀로셰비치는 변신 (變身) 의 명수다.

보스니아내전에서 세르비아계를 배후에서 조종해 온 밀로셰비치는 국제사회로부터 압력이 거세지자 지난 95년 세르비아계와 결별을 선언하고 데이튼평화협정을 받아들이는가 하면, 97년초 실시된 총선에선 좌파세력을 결집해 승리했다.

이어서 같은해 7월엔 3선이 금지된 세르비아대통령직을 사퇴하고 4년 임기의 신유고연방대통령에 취임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발칸의 도살자' 밀로셰비치가 또 다시 민족주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극심한 경제난의 책임을 회피하고 정치적 민주화 요구를 잠재우는 데는 민족주의만큼 효과적인 무기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소보사태는 국내문제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이웃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 더 나아가 그리스.불가리아.터키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는 다시 한번 폭발할지 모른다.

밀로셰비치의 도박은 화약고 앞에서 벌이는 불장난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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