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공직 마감하는 한국전통문화학교 이종철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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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지독한 공무원을 찾기도 어려울 게다. 기록도 많이 세우고 전후좌우 돈독한 선후배 인맥이 그물코같다.

퇴임을 앞둔 한국전통문화학교 이종철 총장은 “저술 틈틈이 사교춤이나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연구소에서 연수하던 시절 춤을 못 춰 애먹은 경험이 있어서다. [김성룡 기자]

31일 41년에 걸친 공직 생활을 마감하는 이종철(65)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차관급)이 주인공이다. 1968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시작해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실장,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을 거쳐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직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40여 년 연구 성과를 담은 책 『문화의 옛길을 걸으며』 『한국 민속신앙의 탐구』 『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민속원) 등 3권을 내고 25일 퇴임 인사를 겸한 출판기념회를 친정이라 할 서울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었다. 그는 『장승』『서낭당』 『한국의 성문화 연구』 등을 낸 대표적 민속학자이지만 공무원으로서 더 이름을 날렸다. 국립민속박물관장을 두 차례에 걸쳐 총 13년간 지내면서 연간 관람객 300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다.

◆한국전통문화학교의 미완의 과제 가슴에 묻고=25일 오전 본사 회의실에서 만난 이 총장은 그러나 “급한 건 학교”라며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미완으로 남겨둔 과제를 차례차례 꺼내 들었다.

▶‘대학’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대학원도 설치하지 못하는 법령 개정 ▶문화재 관련 기술직 공무원 신설 ▶학교 부지 30만 평 확보 ▶구 서울과학관 부지에 학교 부설 박물관·미술관 건립 등이다.

“일본 동경예술대학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중국 칭화대와 자매 결연을 맺었어요. 한·중·일 동북아 문화를 아우르는 국제교류대학원을 만들고자 했죠. 그러려면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많아요.”

곧 물러날 사람 같지 않았다. “총장 직무야 끝났지만 인간적 측면에선 끝낼 수 없잖아요. 앞으로 5년~10년간 제가 키운 아이들이 나올 텐데, 제 책임이 있는 거니까요.”

그는 ‘악덕 총장’이라 불렸다. 학생들에겐 토익점수, 한자급수, 각종 자격증 등을 요구했고 교수들에겐 기러기 아빠 노릇은 끝내고 가족을 학교가 있는 충남 부여로 데리고 오라고 압박했다. 문화재 분야에선 답사와 실습이 중요한 만큼 교수들이 주말까지 털어 학생들을 이끌고 다니길 바랐던 것이다.

◆고객감동으로 박물관에 대한 편견 깨고=“박물관 후배들은 혹사당하면서도 제 뜻을 알고 이해해줬지만, 학교에선 힘들더군요.” 국립민속박물관장으로 있는 동안 6800만 원이던 연간 예산을 120억 원으로 끌어올렸던 그다.

기획예산처 담당 과장에게 삼겹살을 사 먹이며 설득했다. 그래서 ‘로비의 귀재’란 말을 듣기도 했다. “삼겹살로 로비가 되겠습니까? 자료를 잘 만들어 과학적으로 설득해야 해요. 투자한 만큼 효과를 보여주는 고객감동도 있어야죠. 예산을 따는 건 열정으로, 예산 쓰는 건 진실과 예술로써 해야죠.”

국립민속박물관이 꾸렸던 관객 참여형 전시는 늘 화제거리였다. 박물관은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곳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버렸다.

“다니는 데마다 1등, 아니 특등을 만들었지만 학교는 제 마음에 안 차요.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제 건강도 챙기고, 지금껏 못 쓴 글들도 마저 쓰고, 일하며 맺은 업연(業緣)들과 옛 이야기도 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이경희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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