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훌쩍 큰 중국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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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와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양국 네티즌을 상대로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다. ‘한·중 관계가 호적수와 동반자 중 어느 쪽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은 71%가, 중국은 83%가 서로 호적수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양국 미래에 협력보다는 갈등이 더 많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한·중이 정부 차원에서 구가하는 밀월과는 괴리가 있다. 1992년 수교한 한·중은 98년 양국 관계를 ‘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켰다. 경제협력 강화가 목적이었다. 2003년 양국은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올라섰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다시 5년이 흐른 2008년 한·중 관계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정치·외교까지 포함하는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 차원에선 대략 5년 터울로 ‘동반자 관계’의 내용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민간의 감정은 동반자보다는 라이벌 쪽으로 흐르고 있다. 중국 학자 핑위중(憑玉忠)은 한·중 관계의 특색으로 역사와 문화, 지리, 감정의 네 가지가 가깝다는 ‘사근(四近)’을 꼽았지만 아직 감정 부문은 온전치 않은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수치가 웅변한다.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4조4016억 달러로 미국과 일본(4조9237억 달러)에 이어 세계 3위다. 교역액도 미국, 독일에 이어 3위다.

한국과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92년 중국 수출액은 850억 달러에서 지난해 1조4285억 달러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766억 달러에서 4220억 달러가 됐다. 양국의 수출액 격차는 수교 당시 100억 달러가 안 되던 게 이제는 1조 달러 이상으로 벌어졌다. 한국이 한 발 한 발 나아갈 때 중국은 나는 듯이 달린 셈이다. 

왕지쓰(王緝思)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중국의 GDP 총량이 곧 일본을 추월할 텐데 일본이 이 같은 현실을 잘 받아들일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일중역전(日中逆轉)’이라는 말이 이미 유행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초조감을 꼬집은 것이다. ‘한중역전’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중국의 유명 학자 모시기는 이제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졌다는 말이 엄살만은 아니다. 중국 학자로선 미국의 초청장이 널린 마당에 굳이 한국에 올 필요가 없다. 

관건은 이처럼 달라진 상황에 대한 한·중 서로의 눈높이 조정이다. 부쩍 큰 덩치에 걸맞게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행동을 하느냐 여부는 중국의 몫이다. 우리로서는 중국 내에서 한국의 비중이 줄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수교 당시의 추억으로 중국을 상대하려고 한다면 큰 오산이다. 중국의 부상을 찬탄 일색으로만 볼 것도 아니고, 근거 없는 중국 비관론 역시 경계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중국을 있는 그대로 살피는 냉철한 눈이 필요하다.

중국은 어떤 국가 대전략을 설정했으며, 이를 어떤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는지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눈은 우선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갖춰야 한다. 19세기 중엽 이래 ‘백년치욕’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중국을 상대로 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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