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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본 출구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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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말이 통할 뿐만 아니라 경제도 좀 알지요. 요즘엔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급하게 쏟아냈던 정책을 예전으로 되돌리는 이른바 ‘출구전략(exit strategy)’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출구전략의 핵심은 기준금리를 올리고, 재정지출의 고삐를 다시 죄는 것인데, 쉽지 않은 일이지요. 오죽하면 ‘닥터 둠’으로 불리는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정책당국자는 출구전략을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다”고 표현했겠습니까. 차에 탄 승객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브레이크를 아주 살살 밟아야 하는데, 자칫하면 덜컹대면서 시동마저 꺼질 수 있으니까요. 한국 정책당국자도 이런 점 때문에 출구전략 시기상조론을 펴고 있지요.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관료는 출구전략이 늦어 인플레를 유발하는 것보다 경기의 고삐를 서둘러 죄다가 다시 불황에 빠지는 게 더 부담된다고 하더군요. 국민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 입장에서도 불황보다야 인플레가 낫겠지요. 세금 인상과 달리 인플레는 ‘조용하게’ 국민의 재산을 빼앗아가는 방법이라고 하잖아요.

엊그제 이스라엘이 위기 후 처음으로 정책금리를 올렸더군요. 한국도 언젠가는 이런 흐름에 동참하겠지요. 경제는 아무래도 정치나 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제 힘으로 굴러가는 게 좋으니까요.

출구전략을 언제 하는 게 좋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출구전략이 지연되면 어떤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의 높으신 양반이 위기 대책으로 지금 재정을 쓰는 것은 의료보장비나 노령인구의 은퇴비용 등 미래의 다양한 사회보장 지출을 그만큼 줄이게 된다고 했지요. 주요 20개국(G20)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가 몇 년 뒤 100%를 넘을 것이란 전망도 했습니다.

한국 같은 나라의 재정 상황은 선진국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재정 여건을 마냥 낙관할 순 없겠지요.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미래의 나라 곳간 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겠지요. 결국 어찌 보면 출구전략이란 것도 저녁에 먹을 도토리를 갖다가 아침에 먹는 거랑 비슷하네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지요. 주가가 오른다고, 아파트값이 오른다고 마냥 좋아하기만 한다면, 우리랑 다를 게 뭐 있겠어요. 조삼모사는 바로 여러분을 위한 우화(寓話) 아닐까요.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